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이민 정책에 미국 고용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농업과 건설업 등에서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하던 불법 체류자가 급감해서다.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의 고강도 단속에 정상 비자를 받은 이주노동자도 출근을 기피하는 등 노동 공급이 줄고 있다. 이민자가 창출하는 소비 지출이 동반 감소해 미국 국내총생산(GDP) 및 경제성장률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美 작년 최대 29.5만 명 유출
2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건설·서비스·농업 등 산업군이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 이들 산업이 미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9%다.
텍사스의 한 주택사업자는 최근 들어 인력을 구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FT에 말했다. 주택 수요가 늘어 일거리는 쌓이는데, 인력이 부족해 주택 공사장 일곱 군데가 기한 내 완공에 실패했다. 이에 따른 금융 비용도 떠안았다.
서비스업도 비슷한 상황이다. 미국식당협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식당 운영자의 55%(495명)가 이민 단속 활동으로 영업에 부정적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18%(162명)는 직원이 출근하지 않는다고 했고, 25%(225명)는 직원 채용과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전용 비자를 통해 계절별로 필요한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농업도 이민 단속의 직격탄을 맞았다. 해당 제도를 이해하지 못한 ICE 요원들이 비자 소유 근로자의 작업을 중단시키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주요 과제로 불법 이민자 추방을 강조해왔다. 국토안보부 산하에 ICE를 설립해 서류 미비 이주노동자를 체포하고 국경 보안을 강화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62만 명가량이 추방됐다.
반이민 정책 결과로 지난해 미국 순이민 인구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미국 정책 연구기관인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순이민은 최소 -1만 명에서 최대 -29만5000명으로 추정된다. 유엔이 1960년 이후 집계한 인구 추이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전에 미국 순이민 인구가 감소한 사례는 없다. ◇인구 줄며, 이주노동자 대체 어려워브루킹스는 이 같은 인구 감소 압력이 미국 경제에 지속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민자가 창출하는 경제 효과가 줄어 올해 GDP 증가율이 최소 0.12%포인트에서 최대 0.32%포인트 위축될 것이란 해석이다. 이주노동자가 줄어들며 위축되는 소비 활동까지 감안한 수치다.
미국 고용지표는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 민간 고용 정보업체 ADP에 따르면 민간 고용은 지난달 한 주 평균 1만5500명까지 늘어난 뒤 증가세가 꺾이고 있다. 1월 구인 규모는 작년 12월(655만 건) 대비 소폭 증가한 695만 건으로 집계됐다. 고용시장에서 불일치가 발생하며 일자리가 증가하는데도 고용은 늘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백악관은 향후 미취업자가 부족한 일손을 채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애비게일 잭슨 백악관 대변인은 “노동력을 늘릴 수 있는 미국인의 지적·신체적 자원은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FT는 트럼프 진영 상당수 인사가 내국인의 완전고용이 이뤄진 1920년대를 이상향으로 설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적별로 엄격한 고용 할당제를 도입해 외국인 고용을 최소화한 시기다.
다만 이 같은 구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전문가 의견이 많다. 줄리아 겔럿 이민정책연구소 선임은 “저출생·고령화 시대에서 이민이 없다면 사망자를 충분히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미국 고용시장은 미국인과 이민자로 이중화돼 있다”며 “저임금 노동자인 불법 체류자 일자리를 고임금 미국인이 완전히 대체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이민 정책과 관련해 수위를 낮추는 것도 이 같은 인식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고위 참모에게 대규모 추방 정책 수위를 조절할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국토안보부 새 수장으로 인준된 마크웨인 멀린은 “ICE 단속을 보다 ‘협력적 방식’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주형 기자 handb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