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값이 폭등하고 환율과 금리까지 뛰어 경영 여건은 ‘시계 제로’인 상황입니다. 여기에다 미국·이란 전쟁과 미국의 관세 폭탄, 미·중 갈등 등 툭하면 터져 나오는 대외 변수는 이제 상수가 된 느낌이에요. 작년 말 세워놓은 올해 사업 계획은 일찌감치 책상 서랍에 넣어놨습니다.” 얼마 전 만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이렇게 토로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이른바 ‘3고(高)’는 ‘뉴노멀’이 됐고 생각하지도 못한 지정학적 변수가 잇따르면서 공들여 짜놓은 사업 계획이 쓸모없어졌다는 것이다. '3高'와 공급망 붕괴그의 말대로다. 작년 10월 기업들이 사업 계획 초안을 수립할 때만 해도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 초중반이었다. 지금은 1500원을 넘나들고 있다. 원자재와 수입 물량이 많은 기업은 일부 사업을 접어야 할 판이다. 수출 기업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고환율=수출 호황’이란 기존 공식이 깨진 지 오래여서다. 해외에서 들여오는 중간재 물량이 많아지고, 해외 설비투자에 따른 달러 부채가 늘어난 탓이다.
고환율은 고물가와도 맞물린다. 비용은 폭등하고 제품 수요는 줄어드는데, 중국발(發) 밀어내기 여파로 제품 가격을 올리기도 어려운 처지에 내몰렸다.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웬만한 업종이 거의 다 그렇다.
더 큰 문제는 시장금리의 역습이다. 기준금리는 멈춰 있는데, 시장금리의 지표 역할을 하는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최근 연 3.4%대로 치솟았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연 2% 중반대였다. 회사채 시장에선 기업 자금조달에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노조 리스크까지 떠안게 됐다. 곳곳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시행에 기댄 하청업체 노조가 “진짜 사장 나오라”며 원청기업을 뒤흔든다. 경쟁사보다 돈을 더 달라며 총파업을 준비하고(삼성전자 노조), 회사 임원 사무실을 때려 부수는 사태(현대자동차 아산공장 노조)도 현재 진행형이다. 생존 위한 '플랜 B' 짜야이제 우리 기업이 맞닥뜨린 위기는 일시적인 게 아니라 구조적 과제가 됐다. 기업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플랜 B’를 짜야 한다. 매달 환율과 금리, 원자재값 변동을 설비 투자와 배당, 인수합병(M&A) 등의 전략에 자동으로 반영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간판 기업들도 계열사별 사업 경쟁력을 다시 따져보고, 조직 통폐합과 신규 투자 조정을 검토해야 할 때다.
정부도 움직여야 한다. 국민성장펀드를 활용한 기업 초저리 대출과 지분 투자 규모를 키우고, 속도를 높여야 한다. 산업용 전기료 추가 인하와 일시적 법인세 감면 등 특단의 조치도 고민해보길 권한다. 특히 노동권에 대한 메시지를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노란봉투법 시행 취지는 살리되 도를 넘는 폭력과 불법 파업에는 엄정한 법 적용 원칙을 명징하게 세워야 한다. 노조도 변할 때가 됐다.
불확실성 시대다. 동시에 글로벌 기업 간 패권 경쟁이 곧 국가 흥망으로 직결되는 시대다.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에너지 조선 철강 등 산업 전선(戰線)에서 우리 기업들이 뒤처지면 안 되는 이유다. 밀리면 죽는다. 한국 기업들의 건투(健鬪)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