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들이 해외 채용 방식이 바뀌고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해 동남아 국가 중심으로 인력을 확보하던 기존 흐름에서 벗어나 고임금·고숙련 인력이 밀집한 선진국 인재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다.
24일 글로벌 HR·급여 플랫폼 '딜'의 '2025 글로벌 채용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1400명 이상이 고용대행(EOR) 방식으로 해외에서 채용됐다. 이번 조사는 2020년 이후 설립돼 최소 1억달러(약 15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 약 100곳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EOR 방식은 현지 법인을 세우지 않고도 인력을 고용할 수 있어 스타트업의 글로벌 채용 진입 장벽을 낮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채용 지역은 영국(12.2%), 캐나다(11.9%), 독일(8.8%) 등 고임금·고숙련 인력이 밀집한 선진국에 집중됐다. 필리핀·인도 등 저임금 국가 중심으로 인력을 확보해온 기존 중소기업과는 확연히 다른 흐름이다.
해외 채용의 목적도 달라졌다. 인건비를 낮추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생산성과 기술 기여도가 높은 인재를 확보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딥테크 분야에서는 한 명의 고급 인력이 전체 성과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흐름이 더 뚜렷하다는 분석이다.
고성장 스타트업일수록 글로벌 확장 시점을 앞당기며 국경 간 채용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모습도 확인됐다. 기술 경쟁이 고도화되면서 핵심 인력 일부만 내부에 두고 나머지를 외주화하는 방식으로는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 규모가 클수록 인재 확보에 더욱 공격적으로 나서는 경향도 나타났다. 자본력을 바탕으로 핵심 인재를 선점해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구조다. 이 같은 흐름은 AI 스타트업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로이터에 따르면 오픈AI는 약 4000명 규모의 인력을 확보하고, 높은 수준의 주식 보상을 제공하고 있다.
AI 산업에서는 알고리즘 자체보다 이를 설계하고 개선하는 인력이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국적보다 역량을 기준으로 한 글로벌 채용이 빠르게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로 인해 노동시장 구조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특정 국가에 국한됐던 인재 시장이 사실상 하나의 글로벌 시장으로 통합되면서, 기업 간 경쟁 범위도 크게 넓어지고 있다.
다만 이 같은 변화는 인재 시장 전반의 경쟁 심화를 불러오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AI 트레이너 시장에서도 시간당 15~20달러 구간이 30.3%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반면, 50~75달러는 19.1%, 100달러 이상은 6.1%에 그쳤다. 단순 데이터 작업 인력은 상대적으로 낮은 보수에 머무는 반면, 모델 설계·튜닝 등 고급 업무를 수행하는 인력은 높은 보상을 받는 구조가 형성되며, 노동시장 내 양극화가 심화되는 모습이다.
유지희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