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의 자동차 시장 업황은 여느 때보다 좋지 않았다. 최대 판매국인 미국 정부가 수입차에 ‘관세 폭탄’을 부과하면서 7조2000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떠안았고, 여기에 시시각각 변하는 정책 탓에 제대로된 대응을 하기 어려웠다. 트럼프 행정부 내내 생존을 위한 관세 사투가 이어질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의 트럼프 행정부 1년 차 성적표는 의외로 좋다. 독일 폭스바겐그룹을 제치고 일본 도요타그룹에 이어 영업이익 기준 글로벌 2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중국의 공세 속에 유럽 시장에서 폭스바겐그룹이 흔들린 영향이 컸다. 여기에 하이브리드카 경쟁력과 프리미엄 전략을 앞세워 수익성을 끌어올린 현대차그룹의 약진이 눈부시다는 평가다. ◇ 하이브리드카로 캐즘 버텨2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매출 300조3954억원, 영업이익 20조5460억원을 올렸다. 같은 기간 폭스바겐그룹의 영업이익은 89억유로(약 15조2000억원)에 머물렀다.글로벌 판매 순위 3위인 현대차그룹이 연간 영업이익에서 2위인 폭스바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요타그룹은 영업이익 4조3128억엔(약 40조2000억원)으로 선두를 지켰다.
관세 여파에도 높은 영업이익률을 유지했다. 현대차그룹의 영업이익률은 6.8%로 폭스바겐(2.8%)을 크게 웃돈다. 도요타(8.6%)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현대차그룹은 작년 글로벌 시장에서 727만 대를 팔았다. 1132만 대인 도요타그룹과 898만 대인 폭스바겐그룹에 이어 3위다. 경쟁 업체보다 적은 대수의 차를 팔고도 더 많은 이익을 남긴 것이다.
높은 영업이익률의 비결은 하이브리드카에 있다. 미국 내 생산 기지를 갖추고 있는 데다 판매 단가가 더 높아 수익성을 지켜낼 수 있었다. 관세를 감안해 미국에서 가격을 인상한 경쟁사와 달리 현대차그룹은 가격 인상을 최소화하고 하이브리드카 라인업을 강화했다. 작년 미국에서 역대 최다인 183만6172대를 판매한 비결이다. 현대차그룹은 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제네시스 등 고부가가치 차량 판매 비중을 높이며 수익성을 끌어올렸다. 현대차는 지난해 판매량이 413만 대 수준으로 전년과 비슷했지만, 매출은 186조2545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높은 이익률을 보인 현대차그룹과 도요타 모두 하이브리드 판매 확대와 높은 미국 내 생산 비중 등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며 “앞으로도 중국 전기차의 공습을 피할 수 있는 미국 시장에 더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중국의 가성비 전략에 고전반면 폭스바겐그룹은 중국 시장에서의 부진이 결정적이었다. 폭스바겐그룹은 중국에서 매출의 30%가량을 냈다. 하지만 비야디(BYD), 샤오미 등 중국 전기차 브랜드가 가성비를 앞세워 공격하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안방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자토다이내믹스에 따르면 중국 완성차의 유럽 점유율은 2024년 2.6%에서 지난해 5.5%로 1년 새 두 배 넘게 높아졌다. 지난해 4월부터 이어진 미국의 수입차 관세도 악재였다. 폭스바겐그룹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89억유로로 전년보다 53.5% 정도 감소했다. 배출가스 수치 조작 파문이 일었던 2016년 ‘디젤 게이트’ 이후 9년 만에 가장 낮았다. 아르노 안틀리츠 폭스바겐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미국의 관세 인상과 그에 따른 판매 감소가 2025년 실적에 최대 50억유로(약 8조5543억원)에 달하는 부담을 줄 것”이라고 진단했다. 수익성이 나빠지고 있는 폭스바겐 그룹은 2030년까지 독일에서 최대 5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은 공격적인 신차 전략으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2022년 연간 글로벌 자동차 판매 순위에서 사상 처음 3위(684만 대)에 오른 뒤 ‘글로벌 톱3’를 유지하고 있다. 폭스바겐과의 격차는 2023년 193만 대에서 2024년 179만 대, 지난해 171만 대로 좁혀졌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판매 목표를 전년보다 3.2% 늘어난 총 750만8300대로 설정했다. 현대차는 올 2분기 준중형 세단 아반떼 완전변경 모델을 시작으로 3분기 투싼 풀체인지 모델을 출시하고, 제네시스는 GV80와 G80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인다. 제네시스의 첫 대형 전기 SUV인 GV90도 하반기 출시를 앞뒀다. 기아는 하이브리드 엔진을 장착한 준대형 SUV 텔루라이드를 필두로 EV2, 셀토스 등을 내놓을 계획이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