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급등한 국내 유가와 관련해 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 등 4대 정유사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유가 담합 엄단 지시 이후 18일 만이다. 설탕·밀가루·전기설비에 이어 유류 부문까지 민생 담합 수사가 확대되면서,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를 앞두고 직접 수사 권한을 총동원한 ‘민생 수사 총력전’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역대급 인력 투입…과거 담합까지 겨냥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이날 오전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 4곳과 이들을 회원사로 둔 한국석유협회 등 5곳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이들 업체는 국내 유통 유류 및 석유제품 가격을 사전 협의를 통해 임의로 올리거나 동결하는 방식으로 조작한 혐의를 받는다.
이번 압수수색에는 역대급 규모의 인원이 동원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검사 9명과 수사관 90여 명 등 총 100명의 수사 인력을 현장에 투입했다”고 말했다. 검찰이 이번 수사에 조직 역량을 총집중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검찰은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현재의 유가 불안 국면에서의 담합 여부만이 아니라 과거 유가 변동성이 컸던 시기의 담합 여부까지 소급해 들여다볼 계획이다. 앞서 설탕·밀가루 담합 수사에서 2020년부터 수년간의 행위를 적발해낸 전례에 비춰 이번에도 장기간에 걸친 담합 구조 전체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압수수색은 공정거래위원회 고발이 아니라 검찰의 직접 인지수사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일 임시 국무회의에서 정유업계의 기름값 담합 가능성을 겨냥해 “부당 이득은 취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하루 만인 6일 기름값 담합 행위를 ‘반사회적 중대 범죄행위’로 규정해 대검찰청에 엄정 대응을 주문했다. 이후 정부는 13일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하는 등 유가 안정 정책에 총력 대응 중이다.
법조계에서는 사전에 첩보를 확보한 검찰이 대통령의 ‘엄단’ 발언을 계기로 전격적인 강제수사로 전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나희석 부장검사가 이끄는 공조부가 밀가루·설탕·전기설비 입찰 담합 등 ‘3종 세트’ 수사를 마무리한 지 한 달여 만에 새로운 타깃을 겨냥한 셈이다. ◇설탕·밀가루·전기에 이어 유류로 확전
공조부는 지난해 9월부터 5개월간 서민경제 교란 사범을 집중 수사해 총 9조9404억원 규모의 담합 사건에서 52명을 재판에 넘기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11월에는 CJ제일제당·삼양사 등 제당사가 2021~2024년 3조2715억원 규모의 설탕 가격을 짠 혐의를 적발해 기소했다. 올해 2월에는 대한제분·사조동아원 등 제분사 6곳이 2020~2024년 5조9913억원 규모의 밀가루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겼고, 효성·현대·LS 등 10개 업체의 한국전력 발주 입찰 6776억원 규모 낙찰 담합 혐의도 기소했다.
이 대통령은 수사 결과 발표 후 “검찰이 큰 성과를 냈다”며 공개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정 장관도 수사팀을 이례적으로 치하했다. 설탕·밀가루 담합 수사가 자체 첩보로 시작해 공정위 고발요청권 행사로 수사 범위를 확대한 전례에 비춰 이번 정유사 수사 역시 상당한 규모로 불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오는 10월 공소청 출범을 앞두고 검찰이 반부패·경제 분야에 남은 직접 수사 권한에 조직 역량을 집중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검찰 관계자는 “권한이 있는 한 맡은 직무를 다하는 것”이라며 “범죄 혐의가 확인된 사안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란/정희원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