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급등 직격탄…환헤지형 ETF 손실 10배 컸다

입력 2026-03-23 17:27
수정 2026-03-24 00:39
원·달러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1510원을 돌파하자 환노출 전략에 따른 상장지수펀드(ETF) 수익률 격차가 커지고 있다. 같은 지수를 추종하더라도 환율 상승 효과를 반영하는 환노출형 ETF는 낙폭을 줄인 데 비해 환헤지형은 손실폭을 키워 성과가 엇갈렸다. 고유가 장기화와 미국 금리 인하 지연 가능성까지 겹쳐 당분간 달러 강세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환노출 여부에 손익 엇갈려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2월 20일~3월 20일) 국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미국 ETF의 수익률은 환노출 여부에 따라 최대 10배 이상 차이가 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시장 대표지수형인 ‘KODEX 미국S&P500’이 대표적이다. 환노출형은 0.31% 하락하는 데 그쳤는데 환헤지형인 ‘KODEX 미국S&P500(H)’은 이 기간 4.15% 떨어졌다. 나스닥100지수를 추종하는 ‘TIGER 미국나스닥100’은 환노출형이 1.48% 상승한 반면 환헤지형은 2.27% 뒷걸음질 쳤다. 배당형 상품도 예외가 아니다. ‘SOL 미국배당다우존스’가 0.19% 떨어질 때 헤지형 상품은 3.71% 손실을 냈다.

환헤지 여부에 따라 이익과 손실이 뒤바뀐 사례도 있었다. 미국 기술주에 투자하는 ‘TIGER 미국테크TOP10INDXX’는 최근 한 달간 0.99% 상승하며 선방했지만 ‘(H)’가 붙은 환헤지형은 같은 기간 2.87% 급락했다. 채권형인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도 환노출형(1.13%)과 환헤지형(-2.43%)의 희비가 엇갈렸다.

환율 변동을 주가에 반영하는 환노출형과 달리 환헤지형은 선물환 거래 등을 통해 투자 시점의 원화 가치를 고정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내려도 펀드 자산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설계해 순수하게 기초 자산의 등락에 따른 수익을 취하는 구조다. 환헤지형에는 파생상품 비용이 반영돼 수수료율이 소폭 높다. 예를 들어 ‘KODEX 미국S&P500(H)’의 총보수는 연 0.009%로 환노출형(연 0.006%)보다 비싸다.

개인투자자 자금도 환노출형 ETF로 몰리고 있다. 1500원대 원·달러 환율이 고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반영된 결과다. 지난 한 달간 ‘TIGER 미국S&P500’에 총 1266억원 규모의 개인 자금이 순유입될 때 ‘TIGER 미국S&P500(H)’으로는 13억원이 들어왔다. ◇“더 간다” vs “단기 고점” 팽팽달러 강세 흐름은 관련 ETF 수익률에서도 확인된다. 같은 기간 ‘TIGER 미국달러선물레버리지’와 ‘KODEX 미국달러선물’은 각각 7.98%, 4.01% 뛰었다. 반대로 달러 약세에 베팅하는 ‘RISE 미국달러선물인버스’(-3.94%)와 ‘TIGER 미국달러선물인버스2X’(-7.50%)는 하락했다.

증권가는 당분간 고환율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란 전쟁 장기화로 국제 유가가 오르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자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국제 유가 급등, 뉴욕증시 급락, 달러 강세 등 트리플 악재가 아시아 시장에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위험 통화인 원화 약세 부담을 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란 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달으면 환율 상단이 1550원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달러값이 단기 고점에 도달했다는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정부가 국내주식복귀계좌(RIA) 등을 앞세워 적극적인 환율 방어에 나서고 있는 데다 다음달부터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으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환율 1500원 선은 단기 고점이라고 판단한다”며 “이란 사태가 조금만 진정돼도 다시 1400원대 중반으로 급하게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환율 변동성이 커지고 있지만 장기 투자를 염두에 둔 투자자라면 환노출형 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환율 고정을 위한 헤지 비용이 발생하는 환헤지형 상품 특성상 투자 기간이 길수록 수익률을 갉아먹을 가능성이 있다”며 “환헤지형과 환노출형을 적절히 섞어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을 낮추는 전략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