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칼럼 주제는 본래 다른 것이었다. 많은 양의 자료조사와 팩트 체크를 마치고 그것을 구조화하는 것까지는 진행해 두었지만, 글을 쓰기 위해 막상 책상 앞에 앉으니 그 내용을 다시 들여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일들을 하나씩 처리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정보를 쌓고 처리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뇌가 더 이상의 이성적인 활동은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그 대신 복잡한 설명 없이도 감각적으로 가닿을 수 있는 대상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올라왔다. 그 순간 생각난 금각사, 이것이 아닌 다른 어떤 대상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까.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미시마 유키오, 2006, 허호 옮김, 웅진씽크빅)를 읽은 사람이라면 이 건물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책을 읽는 동안 어느 정도 주입된 인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그러했기에 그 절대적 미의 존재를 언젠가 실제로 볼 수 있기를 고대했었다.
그래서 금각사를 실제로 처음 본 순간 ‘어, 아름다운가?’라는 생각이 들며 혼란스러웠다. 아름답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될 그 존재가 분명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타는 듯이 푸른 숲” 속에서 금각의 주위를 계속 돌기만 했었다. 하지만 아름답다는 생각보다는 실체를 잘 모르겠다는 오묘한 인상만 남기고 그 첫 번째 만남은 끝났다.
두 번째로 금각사를 찾아간 날은 쾌청했다. 그래서인지 처음 봤을 때보다 눈부신 금각이 눈앞에 있었다. 한 자리에서 그것을 계속 보고 있으려니 곧 맑았던 하늘에 구름이 깔리며 주변의 채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금각사, 그리고 그 장소 전체 또한 다른 존재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었다.
금각사는 이름 그대로 금이라는 강렬한 재료의 존재감으로 수렴되는 건물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목조건물의 2층과 3층에 약 20만 장의 금박을 입힌 건물이다. 그러나 이 강렬한 재료는 역설적으로 건축의 많은 요소를 지워버린다.
이 건물이 목조라는 사실, 층마다 다른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외부에 상당한 디테일이 구현되어 있다는 점, 심지어 1층에는 금박이 입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쉽게 인식되지 않는다. 대신 금각사는 하나의 인상으로 남는다. 금이라는 비싼 물질로 덮여있는 금빛 덩어리, 이것이 금각사가 대부분의 사람에게 존재하는 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짧은 방문으로 형성될 수 있는 이러한 인상만으로 금각사를 기억한다면 금각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금이라는 재료의 본질을 생각해보면 이 건물은 형태나 양식이 아니라 빛과 함께 경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금은 매우 높은 반사율을 가진 재료이기 때문에 표면에 맺히는 빛의 양에 따라 건물의 인상 자체가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재료는 형태를 분명하게 드러내거나 공간을 명확히 구획하기 위해 사용되지만, 이곳의 금은 명백히 다른 방식, 즉 그 자체의 강렬함과 강한 반사를 통해 디테일을 흐트러뜨리고 건물이 하나의 인상으로 존재하게 한다. 그래서 명확한 구체성보다는 금각사를 본 상황의 감각적 인상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험을 하고 나서야 금각사가 왜 금으로 덮여 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건물이 지어지던 당시 권력자의 막강한 부를 과시하기 위해서만 사용된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던 중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다니자키 준이치로, 2017, 고운기 옮김, 눌와)를 읽게 되었다.
그때 어두운 실내에서 금병풍의 역할을 묘사한 것을 읽으며 어쩌면 빛보다는 어두움이 더 중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어둠 속에 있는 금병풍이 "멀리 떨어진 정원의 밝은 빛의 끝을 붙잡고, 꿈처럼 멍하게 반사되고" 있다고 했으며, "결코 반짝반짝 잽싸게 반짝이지 않고, 거인이 안색을 바꾸듯이, 천천히 긴 사이를 두고 반짝인다"고 하였다.
또한 그 아름다움을 "침통한 아름다움"이라고 하였다. 미시마 유키오 역시 금각을 이야기할 때 어둠에서 출발한다. 그가 꿈꾸는 금각은 "그 주위에 몰려드는 어둠을 배경으로 할 필요"가 있었고, "밤이 오면 주위의 어둠으로부터 힘을 얻어, 지붕을 돛처럼 부풀려 출범하는 것"이었다.
그 금각의 "즐비하게 늘어선 가느다란 기둥이 달빛을 받을 때면, 가야금의 현처럼 느껴져서 거대하고 괴이한 악기"로까지 보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빛뿐만이 아니라 어두움을 함께 인식하는 것이 금각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 더 필요한 일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한편,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금각사의 모습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50년 금각사 방화 사건 이후 이것을 재건하는 여러 차례의 과정에서 금박의 사용 범위와 밀도가 확대되었고, 그 결과 현재와 같은 강렬한 금빛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이는 ‘금각’이라는 이름과 그로 인해 형성된 기대, 다시 말해 사람들이 머릿속에 그려온 이미지에 건물이 점점 가까워진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오랜만에 금각사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구름이 서서히 덮이며 건물의 인상이 변하던 그 순간의 놀라움이었다. 그 후 금각사가 지닌 본래의 이야기, 평소에는 잊고 있는 건물의 디테일, 그리고 빛과 어둠에 대한 감상들을 하나하나 상기해보는 과정은 예상보다 즐거웠다.
이는 실제로도 존재하고 있는 금각사라는 건물이 늘 하나의 이미지와 관념으로 머릿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쩌면 실제로 볼 때보다 금각사를 떠올릴 때 그것의 아름다움이 더 극대화되어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배세연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