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개포주공 2단지’와 ‘은마아파트’는 2003년 나란히 재건축정비사업조합 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10여 년 만인 2015년 개포주공2단지는 조합을 설립했고 2019년 ‘래미안블레스티지’라는 단지명을 내걸었다. 입주 8년이 된 이 단지의 전용면적 84㎡는 지난달 36억7000만원에 최고가를 경신했다.
은마아파트는 2023년 조합 설립 인가를 받았고 올해 사업시행계획 인가 승인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계획대로 이뤄지면 2030년 착공해 2034년께 입주할 수 있다. 두 단지가 재건축을 시작한 해는 같았지만, 끝은 15년가량 차이가 나는 셈이다.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정비사업 기간이 수십 년씩 이어지는 것은 은마아파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비사업을 담당하는 한 시공사 임원은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늦어지는 것은 대부분 조합 내 갈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업 주체인 조합이 재건축 과정에서 필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사업 진행의 최대 걸림돌이 된다는 얘기다.
◇조합 방식 정비사업 1983년 첫 도입
국내 정비사업에서 조합 방식이 일반화된 것은 1983년 제도 변화 이후다. 당시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등 국제행사를 앞둔 시기였다. 공공 자금만으로는 정비사업 추진에 한계가 있었다. 1983년 도시재개발법 시행령을 개정해 ‘합동재개발사업’ 제도를 도입했다.이 방식의 핵심은 토지 등 소유자가 조합을 설립해 사업 시행자가 되는 구조다. 시공사는 공동 사업 시행자로 참여해 자금 조달과 건설을 맡는다. 조합원 분양 이후 남은 시설을 매각하거나 대물로 상환해 비용을 충당한다. 조합 방식은 주민 의견을 반영할 수 있고, 개발 이익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이후 일반적인 정비사업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사업이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일단 정비사업은 절차가 길고, 복잡하다. 기본계획 수립부터 정비구역 지정까지 약 2년이 걸리는 것을 포함해 전체 기간이 20년 가까이 걸린다. 갈등이 발생하면 부지하세월이다. ◇투명성·전문성 부족 지적정비사업에는 “조합이 있으면 비상대책위원회가 있다”는 말이 존재한다. 그만큼 조합원 간 갈등이 빈번하다는 뜻이다. 이 같은 갈등은 사업의 무기한 연장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곳이 경기 남양주시 평내동 진주아파트 재건축 현장이다. 이 단지는 2008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2009년 조합 설립 인가, 2010년 사업시행계획을 거쳐 2013년 이주가 마무리됐다. 순탄해 보였던 사업은 조합 내 갈등으로 멈춰 섰다. 비대위 활동과 조합원 소송이 겹쳤다. 지난해 새 집행부가 들어서 상황이 바뀌었다.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였다.
조합의 ‘독립성 문제’도 제기된다. 조합은 자체 사업비가 없고 시공사 차입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사비 역시 차주는 조합이지만 시공사 연대보증이나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이 없으면 자금 조달이 어렵다”며 “조합은 분양보증도 할 수 없어 구조적 한계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조합 내부 비리 역시 단골손님이다. 최근 경기 성남중원경찰서는 성남시 상대원2구역 조합장의 자택과 조합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재개발 사업 추진 과정에서 특정 업체가 자재 납품권을 따낼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고, 그 대가로 수억원 상당의 금품을 챙긴 혐의다. 기본적으로 조합은 1년 예산을 총회에서 확정하고, 그 범위에서 발주와 계약을 대의원회 의결로 결정한다. 세부 사용처를 감독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 조합장의 연봉은 억대를 넘어선다. 일부 단지는 수십억원의 성과급을 지급하려다 문제가 되기도 했다. ◇신탁·리츠 방식, 대안 될까정부도 조합 방식의 문제점을 인식해 새로운 사업 주체를 인정하고 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공에 이어 2015년에는 도시정비법을 개정해 신탁업자를 사업 시행자로 허용했다. 조합의 전문성 부족과 사업 장기화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였다. 2022년 ‘국민 주거 안정 실현 방안’에서도 신탁사 참여 확대 방침을 제시했다.
일각에서는 신탁 방식 역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탁 방식은 조합 방식의 한계인 전문성 부족, 조합원 갈등, 협력업체 비리, 조합 투명성 문제 등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신탁 방식은 토지 등 소유자와 신탁사의 공동 시행 구조여서 결국 토지 등 소유자 전체 회의의 통제를 받는다. 신탁사가 정비사업에 대한 법적 의무와 책임을 부담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조합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최근에는 리츠(부동산투자회사) 방식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리츠 방식은 토지를 현물 출자한 뒤 투자자 자금을 유치해 개발하는 구조다. 사업비를 금융시장에서 조달하고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조합원은 신규 주택을 분양받거나 지분을 처분해 현금화할 수 있다. 다만 현물출자를 위해서는 양도소득세 부담 완화 등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허지행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준공 30년 이상 된 주택이 빠르게 늘고 있고 신규 택지 공급은 감소하는 흐름”이라며 “도심 주택 공급을 확대하려면 정비사업 속도를 높이는 것이 관건인 만큼 갈등과 지연을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