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고대역폭메모리(HBM) 아키텍처를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설계·검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솔루션을 올 상반기 발표합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HBM 분야에서 긴밀히 협업하고 있죠.”
22일 경기 성남시 판교 시높시스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난 소경신 사장(사진)이 한국경제신문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시높시스 한국 법인인 시높시스코리아를 2023년부터 총괄하고 있다. 취임한 해 6억2550만달러(약 9400억원)이던 시높시스코리아 매출은 지난해 9억4700만달러(약 1조4200억원)로 51.49% 늘었다.
시높시스는 세계 1위 반도체 설계자동화툴(EDA) 기업이다. EDA는 반도체 칩을 설계할 때 꼭 필요한 소프트웨어다. 시높시스의 고객 리스트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올라 있다. 소 사장은 “올 상반기에 두 회사의 간판인 HBM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설계·검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멀티피직스 퓨전’ 기술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이 기술의 장점에 대해 “HBM 설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리적 문제를 빠르게 잡아낼 수 있다”고 소개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은 칩이다. 그런데 이 칩은 적층을 하면 할수록 물리적인 특성이 망가지기 쉽다. 전력이 크게 늘어나면서 발열이 심해지고, 이때 칩이 휘거나 성능이 저하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칩 개발 단계에서도 골치를 썩힌다. 기존의 칩 디자인은 연산성능·속도 개선에 집중하고 가장 마지막에 물리 테스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칩 설계를 완료한 뒤 발열과 전력 불안정 문제를 가장 나중에 발견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처음 개발 과정으로 돌아가야 해 6개월~1년까지 설계 시간이 지체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시높시스는 개별 설계 과정마다 칩의 물리적 특성을 검증할 수 있는 '턴키'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고객사에게 공급한다. 지난해 7월 앤시스를 350억달러(약 50조원)에 인수하면서 소프트웨어의 강점이 훨씬 더 올라갔다.
소 사장은 "앤시스는 칩의 전압, 발열 등 물리적 특성을 검증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면서 "시높시스의 솔루션과 앤시스의 강점을 융합해 HBM 개발 시간을 단축하는 최적의 제품을 공급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시높시스의 솔루션은 HBM 외에도 각종 패키징 칩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시스템반도체(SoC)와 메모리를 마치 한 개 반도체처럼 결합하는 3D 설계회로(IC)에서도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와 협력한다. 삼성전자 측은 "시높시스의 3DIC 컴파일러로 HBM 칩의 성능과 신뢰성을 향상시켰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시높시스의 솔루션은 단순히 칩 단계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소 사장은 "시높시스는 '실리콘 투 시스템'을 지향한다"며 "엔비디아부터 리벨리온, 퓨리오사AI까지 칩 개발 회사들이 '서버 시스템'으로 AI 시장에서 승부수를 띄운 만큼, 단순 칩 뿐만 아니라 서버 시스템을 아우를 수 있는 EDA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엔비디아 역시 시높시스의 압도적 기술력과 미래 확장성에 주목해 최근 약 20억달러 규모의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며 “이는 글로벌 AI 반도체 생태계에서 시높시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강조했다.
소 사장은 한국 고객사 밀착 지원에 대해서도 큰 자신감을 드러냈다. 소 사장은 "인수한 앤시스 직원들까지 합치면 시높시스코리아에는 약 800명의 인력이 있다"면서 "이 중 약 70%가 R&D를 포함한 기술 인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3년 간 시높시스코리아의 대표로 재직하는 동안 미국 본사와 비슷한 R&D 능력을 구축하는 것에 집중했고, AI 반도체 시대에 대응하는 솔루션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핵심 인력을 지속적으로 충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국내 약 35개 대학과 협력해 연간 1500여 명 학생들에게 반도체 교육을 제공하거나, 산업계와 학계에 수백만달러 규모의 검증 하드웨어를 무상 기증하면서 국내 반도체 설계 토양을 키우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해령/강경주 기자 hr.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