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간 전쟁에서 중국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모든 전쟁사에서 전세가 기울어질 때 수세 측이 쓰는 최후의 카드를 보면 의문점이 풀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도 이란이 불리해지자 최대 접점인 호르무즈해협에 위안화 결제 유조선만 통과시킨 것을 계기로 중국과 이란 간 페트로달러화를 와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2차 대전 이후 달러 중심의 브레턴우즈(BW) 체제는 미국이 당면한 현안을 해결할 최상의 대안이었다. 미국은 최대 현안이던 쌍둥이 적자를 자본수지 흑자로 메워 국제수지를 관리했고 달러화 발행에 따른 막대한 시뇨리지(화폐 발행 차익)로 구축한 국방력으로 동맹국의 안보를 책임지면서 팍스 아메리카 시대를 펼칠 수 있었다. BW 체제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금태환 정지 선언이었다. 세계 교역 증가에 따라 생산량이 제한된 금으로는 달러 가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비슷한 시점에 닉슨 대통령 재선을 위한 아서 번스 의장의 정치화로 미국 중앙은행(Fed)의 독립성이 훼손된 것이 겹치며 BW 체제에 대한 신뢰가 예상보다 빨리 떨어졌다.
흔들리던 달러화 위상을 지키려는 차선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고심 끝에 나온 것이 페트로달러화 구상이다. 메커니즘은 BW 체제와 비슷하다.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산유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대신 산유국은 원유 결제를 달러화로 하는 일종의 옵션 바터제다. BW와 다른 점은 교역국에서 산유국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적용 대상이 축소됐지만 페트로달러화 구상은 성공적이었다. 세계 산업 구조가 원유 과소비형 구조였던 데다 미국이 생산을 자제해 원유 교역량을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운용 메커니즘도 1970년대 두 차례 중동 전쟁을 거치며 잘 작동해 중동산 원유 결제의 경우 달러화 비중이 90%까지 올라갔다. 페트로달러화 위상이 높아질수록 원유 최대 생산국인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최대 수요국이자 미국과 경제 패권을 다투는 중국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첫 반발국은 빌 클린턴과 조지 W 부시 대통령 간 교체기를 틈타 원유 결제를 달러화에서 유로화로 바꾼 이라크였다. 그러나 전쟁 끝에 3년 만에 달러화로 환원했다. 이후 20년 이상 유지되던 페트로달러 체제에 도전한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다.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 관여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빚어온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중국과 위안화 결제 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조 바이든 정부의 빈 살만 고립 전략으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을 계기로 페트로달러화 체제가 또 한 차례 도전을 받고 있다. 국익보다 사익, 동맹보다 고립을 지향하는 ‘트럼프 독트린’으로 페트로달러화 위상을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른 산유국의 도전도 예상된다. 1인 독재 체제를 확립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위안화 국제화를 핵심으로 하는 금융 강국론을 제시했다. 미국과 이란 전쟁이 조만간 미·중 간 환율 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로서는 이에 대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