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30명이 1조원 번다"…AI가 만든 초생산성 기업의 등장

입력 2026-03-22 05:54
수정 2026-03-22 05:55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사찰 약수암의 주지스님은 매일 새벽 목탁 대신 노트북 앞에 앉는다. 이 스님의 또 다른 직함은 AI 사주 앱 ‘사주핑’을 만든 이윤섭 대표다.

15세 때 출가한 그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창업을 결심했다. 첫 창업은 미국 대학생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멘탈헬스 스타트업이었다. 불교의 ‘이판사판(理判事判)’ 중 사찰의 재정관리와 행정, 대외 업무 등 실무를 담당하는 ‘사판승(事判僧)’의 길을 택한 것이다.

불자이자 IT 전공자답게 ‘현대인의 불안’을 사주풀이로 연계했고 아이디어 단계부터 실행까지 전부 AI를 활용했다.

한국인이 병원보다 철학관에서 더 많은 고민과 불안을 쏟아낸다는 것을 파악했고 챗GPT나 제미나이 등 생성형 AI 이용자들은 이미 AI를 ‘심리상담 및 감정적 동반자’로 가장 많이 활용(필터드닷컴 보고서)하고 있었다.

이 대표는 “생성형 AI는 성공 기준이 사용자 만족이다 보니 이용자가 듣고 싶어 하는 방향으로 답을 맞추는 ‘아부성 응답’ 문제가 있다”며 “하지만 사주 해석은 좋고 나쁨이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에 오히려 일정한 객관성과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계는 시간 맥락이었다. 그는 “기존 범용 AI는 ‘오늘’, ‘내년’, ‘3년 뒤’ 같은 표현을 계산하거나 이해할 수는 있지만, 이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개인의 삶의 맥락 속에서 해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지시·총괄 가능한
“C레벨만 살아남는다”
이 대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답변 시 다양한 AI를 거치게 설계했다. 여러 생성형 AI를 하나의 팀처럼 묶어 쓰는 ‘AI 오케스트레이션(군집)’ 구조다.

우선 AI가 만세력과 사주의 기본 구조를 학습했다. 답변은 제미나이, 앤트로픽, 챗GPT, 그록 등 다양한 AI가 협업해 산출한다. 이용자가 질문을 요청하면 먼저 하나의 AI가 답변 초안을 만든다.

이후 다른 AI가 내용을 다시 검토한다. 맥락과 논리 구조를 꼼꼼히 따지는 역할이다. 날짜 계산을 담당하는 AI도 따로 있다. 서로 다른 AI가 창과 방패처럼 교차 검증하는 구조다.

앱 개발과 운영 역시 AI로 자동화했다. 사주핑은 최고기술개발자(CTO)를 제외한 개발팀 전원을 AI로 대체했다. AI가 코드를 짜고, 버그를 확인하고, 코드를 수정한다.

과장급인 상위버전 AI는 코드리뷰를 통해 문제 해결을 최적화할 수 있는 각 에이전트에게 업무를 분담시킨다. 유일한 인간인 CTO는 최종 승인과 총괄에만 관여한다.

그는 “3년 전만 해도 창업을 하려면 1명의 기획자에 4명의 개발자가 붙어야지만 지금은 4명의 기획자에 1명의 개발자가 필요한 구조”라며 “기술이 발전할수록 각 분야의 진짜 전문가인 ‘C레벨급’만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직원 1인당 기업가치 1500억원
美 AI 초생산성 기업 수두룩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50명 이하 직원으로 1조원대 매출을 내는 '초생산성'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린 AI 네이티브 기업 리더보드'는 직원 50명 미만으로 연매출 500만 달러(약 73억원) 이상을 달성한 AI 스타트업들을 추적한다. 이 리더보드에 오른 기업들의 평균 팀 규모는 28명에 불과하지만, 직원 1인당 평균 기업가치는 1억 달러(약 1500억원)를 웃돈다. AI가 만들어낸 초생산성이 기업의 규모와 성공의 공식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이제 개인이 인공지능(AI) 기술로 무장해 성공하는 '1인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의 비상장기업)'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똑똑한 사람 1명이 AI 에이전트를 활용하면 수십 명의 효율을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차트에 오른 기업들의 평균 팀 규모는 28명에 불과하지만 직원 1인당 평균 가치는 1억 1192만 9247달러(약 1680억원), 1인당 연평균 매출액은 250만 달러(37억원) 가량이다.

AI 초생산성의 대표적인 기업이 텔레그램이다. 텔레그램은 연간 매출액은 총 10억 달러(1조 5000억원)지만 직원은 30명뿐이다. 실리콘밸리 "야근 사라졌다"
AI에이전트 간 협업하는 시대
특히 각기 다른 전문성을 가진 여러 AI 에이전트가 서로 소통하고 협업하는 'AI 오케스트레이션'이 초생산성의 핵심이 되고 있다.

메타는 지난해 12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AI 에이전트 스타트업 ‘마누스(Manus)’를 20억 달러(약 2조9000억원) 이상에 인수했다. 마누스는 시장조사, 코딩, 데이터 분석, 앱 개발, 웹사이트 제작 등 복잡한 업무를 사람의 개입 없이 스스로 실행하는 범용 AI 에이전트다.

이어 최근에는 ‘AI 전용 소셜미디어’인 몰트북을 인수했다. 몰트북은 AI끼리 대화하고 토론하는 커뮤니티로 인간은 이 공간에 글을 올릴 수 없다. 몰트북 내에서 AI는 서로 코딩 오류 수정 방법이나 암호화폐 투자 전략, 최신 뉴스를 나누고 철학적 논쟁을 펼치기도 하며 상호작용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AI가 개발자를 대체하면서 ‘야근이 사라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AI가 개발 과정을 대신하면서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는 테크 기업도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테크기업 구조조정 현황 실시간 집계 사이트 ‘레이오프스닷에프와이아이’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전 세계 59개 기술 기업이 총 3만 7045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약 두 달 반 동안 매일 500명이 구조조정 대상이 된 셈이다.

올 들어 해고를 단행한 주요 기업을 보면 아마존(해고자 1만6000명), 메타(1500명), 디자인 및 설계 소프트웨어 기업 오토데스크(1000명), 통신장비서비스 기업 에릭슨(1600명), 이미지 공유 플랫폼 기업 핀터레스트(700명) 등이다.

특히 앤트로픽이 선보인 AI 도구인 ‘클로드 코워크’가 테크 기업의 구조조정을 본격화하는 신호탄이 됐다. 클로드 코워크는 개발자나 전문가가 아니라도 코딩과 법률, 금융 분석 등의 ‘지식노동’을 할 수 있도록 분야별 특화 기능(플러그인)을 제공한다.

AI가 단순히 업무를 돕는 수준을 넘어 데이터를 활용하고 새로운 전문 지식을 산출할 수 있는 영역까지 진화한 것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역시 최근 GTC에서 “인공지능(AI)을 하나의 모델로 설명할 수 없다"며 그동안 소수 프런티어 연구소의 폐쇄형 초거대모델 경쟁이 AI 붐을 이끌었다면 앞으로는 오픈모델과 특화모델, 에이전트, 각종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시스템을 누가 더 잘 구현하느냐가 산업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단일 모델이 모든 것을 처리하기보다 여러 모델이 각자 강점을 나눠 맡는 ‘복합 에이전트’ 구조가 확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