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인공지능) 전쟁의 승패를 가를 열쇠를 거머쥐기 위해 세계 정보기술(IT) 업계 거물들이 잇따라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다. 과거 한국을 단순한 판매처나 의례적인 방문지로 여겼던 것과 달리, 이제는 원활한 공급망 확보와 미래 산업의 명운을 건 ‘절박한 협상’을 위해 한국 기업을 찾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AI 반도체 시장의 절대 강자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그 뒤를 맹렬히 추격 중인 리사 수 AMD CEO의 연쇄 방한이다.
치맥 회동'부터 전격 방문까지…타는 목마름은 ‘HBM’특히 젠슨 황 CEO가 지난해 10월 국내 기업인들과 ‘치맥(치킨과 맥주) 회동’을 하며 파격적인 스킨십을 강화한 행보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AI 가속기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한 엔비디아조차 한국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없이는 차세대 제품 출시가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질세라 리사 수 AMD CEO 역시 첫 방한에서 삼성전자와 네이버 등 국내 주요 기업인들을 잇달아 만나 전방위적 협력을 공식화했다. 엔비디아의 독주 체제 속에서 삼성전자의 HBM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역량을 빌려 반전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포석이다.
글로벌 CEO들의 방한 러시는 이미 예견된 흐름이었다. '챗GPT의 아버지'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도 앞다투어 한국을 찾아 삼성전자, SK그룹 등과 연쇄 회동을 가졌던 바 있다.
샘 올트먼·저커버그도 "한국과 손잡아야"이들은 자체 AI 칩 생산을 위한 이른바 ‘AI 반도체 동맹’ 구축을 타진하며 한국의 강력한 IT 인프라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역량에 손을 내밀고 있다. 단순히 부품을 사가는 차원을 넘어, 설계부터 생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한국 기업과의 견고한 파트너십 없이는 글로벌 공급망 전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한국이 이제 전 세계 AI 산업의 지형도를 결정짓는 '전략적 요충지'로 자리매김했다고 입을 모은다.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고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이 본격화되면서 한국의 메모리 기술과 제조 경쟁력은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에 한국은 이제 단순한 파트너 그 이상의 존재"라며 "AI와 반도체, 모빌리티 등 미래 산업의 패권을 쥐기 위한 해외 기업들의 협력 제안과 투자 논의는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