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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격화하면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장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쟁 발발 초반엔 낙관론이 더 강했던 월가에서도 지난 한 주 동안은 확실히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에 따르면 기관투자자들은 18일(현지시간) 하루동안 2022년 약세장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순매도 물량을 쏟아내며 본격적인 포지션 축소에 나섰고, 시장이 내릴 때마다 저가 매수로 하방을 받치던 개인투자자 자금도 이번주 유입액이 전주 대비 15% 줄었습니다. 전쟁 이후 보름이 지나도록 고점 대비 -4% 수준에서 버티던 S&P500은 20일(현지시간) 하루에만 1.5% 내렸고, 나스닥은 2% 하락하며 3년 추세선이 깨졌습니다.
시장의 낙관론이 급격히 꺾인 데엔 지난 한 주 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줄줄이 (반강제로) '매의 발톱'을 드러낸 영향도 큽니다. 물론 원흉(?)은 유가입니다. 호주 중앙은행은 전쟁에 따른 유가 급등을 이유로 금리를 인상했고, 미국 중앙은행(Fed)은 금리를 동결하고 점도표상 올해 1회 인하 예상도 유지했지만 "인플레이션에 진전을 보지 못한다면 금리 인하도 할 수 없을 것(파월 Fed 의장)"이라며 완화적 기대를 차단했습니다. 약한 고용 시장보다 물가 상승의 위험을 더 경계한 것입니다.
오랜 디플레이션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일본 중앙은행마저 "전쟁이 주요 리스크로 부상하면 이에 중점을 두고 대응할 것(우에다 BOJ 총재)"이라고 했고요. 뒤이어 영국과 유럽연합(EU) 중앙은행도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이르면 4월에도 긴축에 나설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자 전 세계 채권시장이 급락했습니다.
이란 전쟁 이전 3.37%, FOMC 이전 3.65%였던 미국채 2년물 금리는 20일 3.89%까지 급등(채권가격 하락)했습니다. 현재 기준금리(3.625%)보다 높아져 사실상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반영했습니다. 유가만 바라보던 시장의 걱정거리에 이제 금리까지 추가된 겁니다. 닐 두타 르네상스매크로 이코노미스트는 "이제 좋은 소식으로 인한 금리 인하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실업률이 상승하더라도 Fed가 즉시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경제를 지탱해줄 또 하나의 안전장치가 사라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런 국면에서 국채와 함께 급락한 것이 또 있습니다. 금입니다. 20일 금 선물 가격은 4574.9달러까지 하락해 일주일 만에 9.6% 내렸습니다. 2011년 9월 이후 가장 큰 주간 하락폭입니다. 통념대로라면 더 높아진 지정학적 리스크와 유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 속에서 전통의 '안전자산'이자 '인플레 헤지 수단'인 금값이 올라야 할 것 같지만, 시장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금, 안전 자산보다 유동성 자산으로 전쟁 이후 오히려 금이 급락하고 있는 첫 번째 이유는 사실 '많이 올라서' 입니다. 금은 최근의 급락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간 상승률이 41.5%에 달합니다.
전쟁 이후 유가, 주가, 금리 등 모든 자산 가격의 변동성이 폭발하고 유동성 스트레스가 불거진 상황에서 현금 마련이 급해진 일부 투자자들은 가장 수익률이 좋고 유동성도 풍부한 금을 우선으로 내다팔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야데니리서치는 "금은 급격한 상승 후 이익 실현의 압박을 받고 있다"면서 "중동의 투자자들도 금을 팔아 미국 달러를 확보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레버리지 거래 비중이 큰 헤지펀드들이 변동성이 급격히 커진 금리 시장에서의 손실을 만회하고 강제 포지션 청산에 대응하기 위해 금을 매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쟁 이전까지 헤지펀드들은 장단기 금리차가 다시 벌어질 것(스티프닝)으로 보고 레버리지까지 걸어 베팅하는 포지션을 많이 쌓아둔 상태였습니다. Fed는 금리를 계속 내릴 것이고(단기금리 하락), 장기금리는 더 많은 부채와 인플레이션 우려로 내려오지 못할 테니 장단기 금리차는 확대될 것이란 예측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터지고, 중앙은행 금리 인상 우려에 단기금리가 급등하면서 시장은 헤지펀드들의 베팅과 반대로 움직였습니다. 미국채 30년물과 2년물 금리 격차는 18일 1%포인트 미만까지 좁혀져 지난해 7월 이후 가장 낮은 스프레드를 기록했습니다. 포지션 강제 청산 위기에 처한 헤지펀드들은 마진콜(담보가치 하락에 따른 추가 증거금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빨리 팔 수 있으면서 그동안 많이 올라 평가 이익이 쌓여 있던 금부터 내다팔기 시작합니다. 18일 장단기 금리차가 급격히 축소된 동시에 금이 급락한 장면 뒤엔 이런 이유도 있었다는 겁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3월 첫째주 펀드매니저서베이 결과를 보면 가장 선호하는 거래 1위는 여전히 '금 매수(35%)'였습니다. 동시에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전 세계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자산 1위가 일본 주식, 2위가 바로 금이었습니다. 이 설명대로라면 금이 투자 매력을 잃었다기보다는, 극심한 변동성 장세 속에서 급전 마련을 위한 '현금인출기(ATM)'로 금이 쓰이면서 매도 폭탄을 맞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쉬운 인하의 시대는 끝났다"중앙은행들의 금리 인하 기대가 급격히 식으면서 급부상한 '고금리 장기화' 시나리오도 금에 불리합니다.
금은 역사적으로 실질금리와 역의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금은 안전자산이지만 동시에 '무이자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체로 이자나 배당 같은 현금흐름을 창출하지 못하는 금은 기준금리가 높게 유지되고 실질금리가 오르는 국면에선 투자 매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집니다. 전쟁이 안전자산으로서 금의 수요를 자극하는 것보다, 유가와 금리가 상승하면서 금의 매력을 깎아내리는 구조가 더 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전쟁 발발 직후 반짝 상승했던 금값은 Fed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연속 금리 인상에 나서자 7개월 연속 하락했습니다. Fed의 금리 인상 속도 조절 가능성이 거론되고 나서야 반등했지요. 유가 급등으로 중앙은행들의 긴축 우려가 커진 지금도 똑같은 역학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Fed의 비공식 대변인으로도 불리는 닉 티미라오스 WSJ 기자는 이번 3월 FOMC를 통해 "'쉬운' 금리 인하의 시대는 끝났을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Fed는 작년까지 '정책 재조정(recalibration)'이라는 명목으로 인플레이션이 2%를 웃도는 국면에서도 금리를 계속 내려왔지만, 이젠 확실히 인플레이션이 내려오거나 확실히 고용시장이 망가지는 데이터가 나오지 않으면 금리를 인하하기 어려울 것이란 뜻입니다.
또 금리 인하가 재개되더라도 이전 기대만큼 인하 폭이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Fed는 이번 분기 경제 전망에서 장기(중립)금리 추정치(3.0→3.125%)와 장기 GDP 성장률 추정치(1.8→2.0%) 중앙값을 상향조정했습니다. 장기 성장률 추정치가 상향된 것은 무려 6년 만입니다. 생산성이 증가하면서 미국 경제의 잠재 성장률이 높아졌고, 이로 인해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중립금리도 높아졌다는 인식을 드러낸 겁니다.
중립금리란 물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경제 성장을 제약하지 않는,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정상 금리' 수준입니다. 쉽게 말해 Fed는 이 중립금리를 목표로 기준금리를 조정해 가는데, 이 중립금리가 이전보다 높아졌다는 것은 Fed가 장기적으로 금리를 내려야 할 폭이 그만큼 줄었다는 뜻입니다.
이제 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익숙해졌던 초저금리 시대가 저물고, 이제까지 기대했던 것보다 높은 금리가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에 맞닥뜨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금리와 금값에도 큰 변동성이 나타난 셈입니다. 월가 "금리 인상 전망은 넌센스" 그렇다면 정말 Fed는 올해 내내 금리 동결, 심지어 금리 인상까지 하게 될까요? 전쟁 이전엔 올해 2~3회 금리 인하를 예상했던 Fed 금리 선물 시장은 이제 80%의 확률로 동결, 5.3%의 확률로 인상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월가에선 '지금과 2022년은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쟁과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진 건 맞지만, 노동시장이나 가계 저축률, 총수요 등으로 볼 때 경제 펀더멘털은 2022년보다 더 약하다는 겁니다.
핵심은 고용과 물가 안정이란 양대 의무를 지고 있는 Fed가 노동시장이 둔화하는 상황에서 물가만 보고 금리를 올리진 못할 것이란 논리입니다. JP모건은 "성장 리스크가 동반된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지정학적 공급 충격에 긴축으로 대응하긴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씨티는 "결국엔 실업률 상승이 Fed를 움직일 것"이라면서 올해 3번 인하 전망을 유지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의견은 이란 전쟁이 4~5월 이후까지 장기화하진 않을 것이란 기대를 암묵적으로 전제합니다.
마이클 하트넷 뱅크오브아메리카 수석 전략가(사진)는 "Fed가 금리 인상을 할 것이란 생각은 넌센스"라면서 "유가 급등 때문에 지연되겠지만 결국엔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 본다. 우린 모두 시장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Fed가 개입하는 것이 너무나 익숙한 세상에 살고 있는 '양적완화 세대(Gen QE)'"라고 말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부채 구조와 시장 붕괴 위험 때문에 Fed가 과도한 긴축은 할 수 없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은 금리를 올려야 지금의 기형적인 '부채 경제'를 바로잡고 과도한 자산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지만, 정치적 부담과 증시 붕괴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 '쓴 약'을 처방할 의지가 중앙은행에 있을지 의문이라는 뉘앙스도 깔려있습니다. 금 강세장 끝났나 전쟁 이후 금값의 엄청난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월가에선 금의 구조적인 투자 필요성에 대한 논리를 아직 꺾지 않고 있습니다. '피터 린치의 보좌관'으로 이름을 알린 조지 노블은 "통제 불능의 재정·통화 정책과 끈적한 인플레이션, 갈수록 심해지는 지정학적 긴장과 지금의 에너지 쇼크까지 고려하면 금에 대해 약세로 돌아서기가 더 힘들다"고 했습니다.
스탠리 드러켄밀러는 지정학적 위험에 대한 헤지 자산으로, 레이 달리오는 자본 전쟁(capital war) 시대에 종이 화폐를 비롯한 전통 금융 자산의 신뢰 하락에 대비할 자산으로 금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골드만삭스는 "제도적 신뢰에 의존하지 않는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금을 바라봅니다. 공격적으로 자산을 불리기 위한 수단이 아닌, 종이화폐의 하락에 대비할 전통적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보유를 권한다는 뜻입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