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3월 20일 오후 4시 38분
국민연금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에 의견을 내지 않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기업 지배구조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칠 정도로 심각한 결격사유가 있지 않은 한 기존 이사회를 지지하는 것이 관례였다. 국민연금은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과 관련해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 권익 침해 이력이 있는 자 등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의 예상 밖 의결권 행사로 고려아연 이사회 구도도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20일 국민연금에 따르면 전날 열린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는 최 회장과 최 회장 측이 추천한 이사 후보 전원에 대해 의결권 미행사 또는 반대를 결정했다. 집중투표제가 적용되는 이번 주총에서 의결권 미행사는 반대나 다름없다.
2024년부터 시작된 고려아연 분쟁에서 국민연금은 집중투표제 도입, 이사 수 상한 설정 등 최 회장 측 안건에 손을 들어줬다. 이번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영풍·MBK파트너스가 추천한 이사 후보 3명, 고려아연과 미국 전쟁부(국방부)의 합작법인 크루서블JV가 추천한 이사 후보 1명에 대해선 의결권을 절반씩 나눠 찬성하기로 했다. 신주 발행 시 이사 충실의무 도입, 집행임원제 도입, 주총의장 변경, 이사회 소집 절차 변경, 임원퇴직금 지급 규정 개정 등 영풍·MBK 측의 주주 제안에도 찬성의 뜻을 밝혔다. 고려아연은 입장문을 내고 “국민연금 수책위의 전략적 의결권 행사 방향을 존중한다”며 “이사회의 다양성 강화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한 균형적이고 중립적인 판단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에도 최 회장의 사내이사직 연임 자체엔 문제가 없다. 올해도 고려아연 이사 선임은 집중투표제로 시행되기 때문이다. 우호 지분까지 약 30%를 보유한 최 회장 측이 본인에게 표를 몰아주면 연임이 무난할 전망이다.
고려아연 이사회 정원 19명 중 4명은 가처분으로 직무가 정지된 상태다. 15명 중 최 회장 측 인사는 11명, 영풍·MBK 측 인사는 4명이다. 곧 임기가 만료되는 이사 6명 가운데 최 회장은 이번 주총에서 5명을, 영풍·MBK는 6명을 뽑자고 제안해 놓은 상태다.
최 회장 주장대로 5명을 뽑으면 새로 뽑히는 이사는 최 회장 측 2명, 영풍·MBK 측 2명, 미국 정부 측 1명이 될 가능성이 유력하다. 출석률과 소수주주 표심에 따라 최 회장 측에서 1명만 선임되고 영풍·MBK 측에서 3명이 뽑힐 확률도 없지 않다. 이 경우 고려아연 이사회는 기존 ‘11 대 4’에서 ‘9 대 5’ 또는 ‘8 대 6’으로 재편된다.
6명을 선임한다면 최 회장 측 2명, 영풍·MBK 측 3명, 미국 정부 측 1명이 선임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이사회 구도는 ‘9 대 6’이 된다.
송은경 기자 nor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