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해운사인 MSC가 장금상선의 유조선 사업 계열사인 장금마리타임의 지분 50%를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정태순 장금상선 회장(사진)은 이날 본지 기자와 만나 “장금마리타임 지분 매각은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사업 등을 협력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밝혔다. 중동 사태로 장금상선 몸값이 크게 오른 것을 감안해 매각가를 변경할 가능성에 대해선 “중동 사태와 상관없이 지분 매각은 기존 금액 그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MSC가 세계 최대 VLCC 보유 선사인 장금마리타임 지분 50%를 인수하면 국내외 해운 시장의 판도가 뒤흔들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동 사태 전 매각 계약 확정”
스위스 해운사 MSC는 장금마리타임 지분 50%를 인수해 공동 경영권을 확보하는 기업 결합을 추진 중이다. 그리스 규제 당국인 헬레닉 경쟁위원회는 MSC 자회사인 SAS LUX와 장금마리타임 간 기업결합 신고를 접수했다고 최근 공시했다. MSC와 장금상선 측은 이미 이와 관련한 기본 계약을 체결했다. 장금상선 측은 이 같은 내용을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에도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금상선은 VLCC와 컨테이너선 등을 정유사와 무역업체 등에 빌려주는 회사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원유 부족 사태가 장기화하자 장금상선 몸값은 치솟고 있다. 장금상선이 운영하는 VLCC는 130~150척으로 세계 VLCC 약 880척의 14~17%를 차지한다. 블룸버그통신은 “그림자 선대를 제외하고 세계 모든 항로에서 문제없이 운항할 수 있는 초대형 유조선 중 40%를 장금상선이 운영 중”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단일 선사 기준으로는 유례없는 점유율이다.
MSC가 장금마리타임 지분 50%를 인수하기로 한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최근 중동 지역 지정학적 리스크로 VLCC 용선료가 상승하면서 장금마리타임의 관련 자산 가치가 두 배 이상으로 늘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정 회장은 “중동 사태 전 인수 계약이 확정됐다”며 “회사를 통째로 매각하는 게 아니라 사업 협력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각국 규제 승인 절차 넘어야이번 협상을 주도한 이는 정 회장 아들 정가현 이사인 것으로 전해졌다. 장금마리타임은 정 이사가 지분을 100% 보유한 회사다. 이번 매각이 추진되면 MSC 측이 지분 50%를 인수하고, 정 이사가 나머지 지분을 갖게 된다. 장금상선은 코로나19 직후인 2022년부터 VLCC 매입을 늘려왔다. 전염병이나 전쟁 등이 터지면 선박 용선료가 평소의 10배 이상으로 치솟는 점을 감안해 선제 투자에 나선 것이다. 시장에서 거론되는 용선료는 최고 하루 50만달러(약 7억5000만원)에 달한다. 지난해 평균 대비 10배 수준이다. 호르무즈해협이 폐쇄된 상황에서 초대형 유조선을 ‘해상 원유 저장고’로 쓰려는 수요도 늘고 있다. 바다 위에 띄워 저장하는 것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다.
MSC는 컨테이너선 시장에서 선복량 기준 점유율 약 21%를 차지하는 1위 기업이다. 이란발 원유 대란이 닥친 상황에서 VLCC 시장에 ‘공룡급 선사’가 진입하면서 향후 해운 시장의 판도가 바뀔지도 주목된다. MSC는 기존 컨테이너선 중심의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 벌크선, 크루즈, 자동차운반선(PCTC)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해왔다.
다만 이번 거래가 마무리되려면 주요국 경쟁당국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그리스와 한국, 키프로스, 노르웨이를 비롯해 관련국 규제 당국에서 기업결합 승인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노유정/안시욱/신정은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