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노동조합법 2·3조(노란봉투법)가 시행된 지 열흘 만에 12곳의 사업장에서 원청 기업이 하청 노조의 사용자인지를 두고 법적 분쟁이 본격화했다. 첫 법적 판단은 이르면 오는 23일 나온다. 노동위원회의 첫 결정 내용은 향후 하청 노조와 원청 기업 간 ‘교섭 가이드라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사 양측이 노동위 판단에 불복할 경우 행정 소송이 잇따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청노조 잇단 ‘교섭 미공고’ 시정 신청
20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HD현대삼호 등 12곳 사업장의 하청 노조가 지난 13일부터 19일까지 원청을 대상으로 ‘교섭요구 사실 미공고 시정 신청’(시정 신청)을 냈다. 하청 노조들이 원청이 자신들의 사용자인지를 판단받기 위한 법적 절차에 들어갔다는 의미다.
개정 노조법 시행령에 따르면 원청 사업주는 하청 노조로부터 교섭 요구를 받으면 7일간 사업장에 그 사실을 공고해 다른 노조도 교섭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고하지 않았다는 건 원청이 스스로를 사용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이 경우 하청 노조는 노동위에 시정을 신청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노동위는 원청이 ‘공고 의무’가 있는 사용자인지를 판단하게 된다.
시정 신청은 연일 이어지고 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는 이날 롯데·신세계·현대 등 백화점 5개사와 롯데·신라 등 면세점 6개사 등 총 11개 원청을 상대로 시정 신청을 낸다고 밝혔다. 입점 업체 소속 판매 사원으로 구성된 이 노조는 “백화점·면세점은 하청 노동자의 영업시간, 복장 등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진짜 사장”이라며 “교섭 요구를 했지만 단 한 곳도 공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는 전날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 지역 15개 대학을 상대로 원청 교섭을 위한 공고를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은 노조에 공식 회신을 통해 “우리 대학이 사용자라고 판단되지 않는다”며 거부 입장을 명확히 했다. 노조는 인덕대와 성공회대를 상대로 19일 시정 신청을 냈고 나머지 대학에 대해서도 조만간 법적 조치에 나설 예정이다. ◇늦어도 내달 초 ‘사용자성’ 첫 판단노동위의 첫 판단은 이르면 23일 나올 것으로 보인다. 13일 공공기관 소속 한 하청 노조가 처음 시정 신청을 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시행령에 따르면 노동위는 시정 신청 접수 후 10일 이내에 판단을 내려야 하며, 필요시 10일 연장이 가능하다. 연장을 감안하더라도 늦어도 다음달 3일 이전에는 첫 판단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산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대기업 인사노무 부서장은 “기존 노동위의 판정례나 법원 판례가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첫 판단이 향후 분쟁의 기준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하청 노조의 교섭 전략뿐 아니라 기업 대응 방식까지 좌우할 것”이라고 했다.
현장에서는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가 쏟아지면서 사용자성 판단을 둘러싼 분쟁이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10일 법 시행 이후 9일간 하청노조 683곳이 287개 원청 사업장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이 중 실제 공고를 거쳐 교섭 절차에 들어간 사업장은 13곳에 불과하다. 상당수 원청이 사용자성 판단을 이유로 대응을 유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곽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