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적 AI' 만들겠다"는 이 사람, 10년 만에 한국에 온다 [김인엽의 퓨처 디스패치]

입력 2026-03-20 08:55
수정 2026-03-20 10:32

구글은 최근 영국 런던에 짓고 있는 사무실에 '플랫폼 37'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016년 3월 10일,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2국에서 둔 '37번째 수'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당시 알파고가 놓은 수에 해설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인간이 그 수를 둘 확률은 1만분의 1.평론가들은 ‘악수’라고 평가했다. 당시 구글 딥마인드 연구원으로 현장을 지켜보던 이오안니스 안토노글루 리플렉션AI 공동창업자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본지 인터뷰에서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처음엔 버그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알파고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죠. ‘아냐, 걱정 마."


이 대국은 AI와 구글 딥마인드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이 됐다. 당시 팀을 이끌던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자신감을 얻고 AI를 과학 연구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는 2년 뒤 단백질 구조 예측 프로그램 '알파폴드'를 개발했고, 그로부터 6년 뒤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이제는 일반인공지능(AGI)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허사비스 CEO가 내달 말 한국을 찾는다. 이세돌과 10년만에 재회19일 업계에 따르면 허사비스 CEO는 다음달 29일 서울 역삼동 구글코리아에서 ‘알파고에서 미래로’(From AlpahGo to future)를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이 자리에서 알파고 이후 현재까지 AI 개발 과정을 공유하고 AI 발전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

허사비스 CEO는 같은 날 이 9단과도 만나 알파고가 바꾼 인류의 미래를 주제로 대담한다. 이 9단은 지난 10일 알파고 10주년을 맞아 “알파고는 마치 미래에서 온 로드맵처럼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인류에게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고 했다.

허사비스 CEO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선발 중인 한국 정부에 제미나이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의 성공 경험을 전수하는 자리를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면담하는 일정을 조율 중이다. 배 부총리는 지난 18일 독자 AI 관계 기업 간담회에서 “한국에 앤스로픽, 구글 딥마인드 같은 글로벌 AI 기업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허사비스 CEO가 정·재계 인사를 만나 AI 연구에 필요한 하드웨어 공급을 요청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는 1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메모리 공급난과 관련해 “컴퓨팅 자원이 병목 현상을 일으켜 연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구글 AI 근간 된 알파고알파고는 지금도 구글 AI 기술의 근간을 이룬다. 허사비스 CEO는 이달 10일 “알파고의 승리 이후 우리는 이를 과학, 수학 등 여러 분야에 적용했다”고 밝혔다. 알파고 개발의 핵심 원리인 ‘강화학습’은 2024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은메달 수준의 성적을 거둔 ‘알파프루프’, 지난해 출시된 코딩 AI 에이전트 ‘알파이볼브’에도 적용됐다. 강화학습은 행동심리학에서 영감을 얻은 기계학습 방식으로, AI가 주어진 환경 내에서 보상을 최대화하는 행동을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다.

허사비스 CEO는 인간처럼 생각하는 AGI를 구현하는 데도 알파고가 핵심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제미나이 월드모델과 알파고의 탐색·계획 기법은 AGI 구현에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제미나이 월드모델은 AI가 실제와 똑같은 물리법칙이 적용되는 세계를 구현하는 기술을, 알파고의 탐색·계획 기법은 천문학적인 횟수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장 좋은 수를 찾아내는 탐색법을 말한다.

10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는 허사비스 CEO의 위상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2016년 100명 이하 연구자를 이끌던 허사비스 CEO는 7700여명이 일하는 대형 연구조직의 수장이 됐다. 딥마인드는 2023년 기존 구글 AI 연구조직인 구글 브레인을 통합하며 구글의 ‘AI 엔진’으로 작동하고 있다. AI 개척하는 '알파고 마피아', 한국은 어디쯤?알파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구진 중 일부는 딥마인드를 나와 각자의 영역에서 AI의 미래를 개척하고 있다. 리플렉션 AI를 창업한 안토노글루 공동창업자가 대표적이다. 그는 알파고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인간 기보를 전혀 학습하지 않은 ‘알파고 제로’, 바둑 규칙도 모른 채 최고 수준에 도달한 ‘뮤제로’, 구글의 생성형 AI 모델 ‘제미나이’ 개발까지 참여한 핵심 연구자다.

안토노글루 공동창업자는 2024년 딥마인드 동료인 미샤 라스킨과 함께 회사를 떠나 리플렉션AI를 창업했다. 목표는 서방 세계의 첨단 오픈소스 프런티어 AI 연구소를 세우는 것이다. 그는 “과학적 진보를 위해서는 연구 결과를 공개하고 다른 연구자가 이를 기반으로 더 나은 연구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창업 배경을 설명했다.


알파고 프로젝트의 수석 연구자였던 데이비드 실버 역시 올해 초 영국 런던에 AI 연구소 ‘인에퍼블 인텔리전스’를 세웠다. 목표는 ‘초인적 지능’을 구현하는 새로운 AI 패러다임을 찾는 것이다.

실버가 딥마인드를 떠난 배경은 지난해 4월 발표한 논문 ‘경험의 시대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the Era of Experience)’에서 드러난다. 그는 “AI는 최근 몇 년간 방대한 인간 데이터를 학습하고 미세 조정을 통해 놀라운 발전을 이뤘지만 인간을 모방하는 방식만으로는 많은 핵심 문제에서 초인적 지능에 도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2017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해 구글 브레인 연구진 8명이 발표한 논문 ‘어텐션만으로 충분하다(Attention Is All You Need)’는 AI 연구 지형을 완전히 바꿔놨다. 이 논문은 오늘날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등 대규모언어모델(LLM)의 바탕이 된 트랜스포머 모델을 제시했다. 트랜스포머의 핵심은 ‘어텐션’ 메커니즘이다. 문장 속 단어 간 관계를 한꺼번에 파악하게 하는 방식이다. 과거 AI가 책을 읽듯 문장을 순서대로 처리했다면 트랜스포머는 책 전체를 펼쳐놓고 핵심 단어 간 연결을 동시에 계산한다.

이 방식은 데이터를 병렬로 처리할 수 있게 하면서 AI 발전 속도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수백 년 걸릴 데이터 학습이 수개월로 줄었다. 동시에 병렬 연산에 특화된 그래픽처리장치(GPU)가 AI 인프라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할 수 있게 되자 AI는 읽기, 쓰기, 번역, 코딩, 이미지 생성 등 광범위한 과제를 수행하는 범용 기술로 진화했다. 현재 시장에 등장한 AI 챗봇 대부분이 트랜스포머 기반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실버는 이 모델이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다고 본다. 그는 “수학, 코딩, 과학 등 핵심 분야에서 인간 데이터로부터 추출할 수 있는 지식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 규모를 키우면 AI 성능이 올라간다는 ‘스케일링 법칙’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가 제시한 대안은 알파고를 탄생시킨 강화학습으로의 회귀다.

실버는 “새로운 수학 정리와 과학적 돌파구는 과거 데이터만으로는 발견할 수 없다”며 “AI 에이전트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생성한 경험 데이터를 학습해야 초인적 지능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알파고가 수십만 번의 ‘자기 대국’을 통해 인간 최고 기사를 넘어섰듯 AI 역시 스스로 경험을 축적하며 지능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알파고 논문의 핵심 저자이자 ‘오픈AI의 아버지’로 불리는 일리야 수츠케베르 세이프슈퍼인텔리전스(SSI) 최고경영자(CEO)도 트랜스포머 이후의 AI를 찾고 있다. 그가 내놓은 해법은 인간 직관과 비슷한 ‘가치함수’다. 인간이 AI보다 훨씬 적은 데이터로 학습하는 것은 감정이라는 피드백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예컨대 운전을 배울 때 인간은 ‘위험하다’(공포) ‘잘하고 있다’(만족) 같은 감정 신호를 통해 행동을 빠르게 조정한다.

알파고 프로젝트 멤버인 로랑 시프르가 공동 창업한 스타트업 H는 컴퓨터를 대신 조작하는 AI 에이전트를 개발 중이다. 이 회사 역시 모델이 자체적으로 데이터를 만들고 경험에서 배워나가는 방식을 채택했다. 알파고 이후 10년 만에 AI 연구의 중심 축은 ‘데이터를 학습하는 AI’에서 ‘경험을 축적하는 AI’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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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김형규/이영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