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선수로서 내 이름을 세계에 알린 계기는 2011년 US 여자오픈 우승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한국에서 온 선수가 영어로 인터뷰를 잘해서 현지 미디어가 더 주목했다고 한다. 고백하자면 사실은 영어를 잘한 것이 아니라 영어를 잘 외웠을 뿐이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를 목표로 2011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캐나다 선생님과 수업했다. US여자오픈에 가기 2주일 전쯤 선생님은 우승했다는 가정 아래 인터뷰 공부를 해 보자고 제안했다. 대회 개최지인 콜로라도는 금광 발견을 계기로 생긴 도시다. 그런 특성을 살려서 “나는 오늘 내 골프 인생의 금광을 발견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준비했다. 우승의 기쁨을 담아서 말해 보라고 했지만, 설마 하는 마음 때문에 감정을 살려 연습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저 달달 외웠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암기한 영어 문장들을 실제로 많은 카메라와 기자 앞에서 말했다. 생방송 라디오 인터뷰까지 했다. 암기를 잘한 것뿐인데 순식간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됐다. 대회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영어를 잘하는 비결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렇게 나는 영어를 진짜 잘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나의 완벽주의 성향이 폭발한 때가 아닌가 싶다. 2년 동안은 쉬면서 영상을 볼 때도 영어 영상만 봤다. 평소에 쓸 법한 대사는 그냥 외웠다. 처음엔 미국 유머가 전혀 재미있지 않았지만, 자꾸 접하다 보니 어느새 젖어들었다. 그 덕분인지 LPGA 투어에서 외국 친구를 금세 사귈 수 있었다. 친구가 많아지니 투어는 자연스럽게 편안해졌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영어 인터뷰가 편한 적은 없다. 매번 똑같은 말만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신경이 쓰였다. 발음은 괜찮은지, 질문을 잘 알아들은 건지 항상 걱정이 많았다. 그 때문에 미국에서 뛰는 12년 내내 영어 공부를 멈춘 적은 한 번도 없다. ‘영어를 잘하는 선수’라는 타이틀 앞에서 부끄럽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어는 늘 스트레스였지만 노력 덕분에 나는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다양한 행사에 참여했고 더 큰 세계를 볼 수 있게 됐다.
한국 선수들이 실력에 비해 현지 방송에 자주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간혹 듣는다. 우리 선수들이 영어를 조금 더 잘해서 전 세계 팬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골프로만 관심이 가는 선수가 아닌, 이야기 자체가 더 흥미로운 선수가 되면 좋지 않을까. 골프선수는 골프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무대에 나온 김에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선수가 되면 어떨지. 후배 선수의 노력과 노고가 더 빛을 발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박수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