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교보·한화 등 국내 3대 생명보험사의 보험금청구권 신탁 계약액이 6000억원을 넘어섰다. 해당 제도가 도입된 지 1년 3개월 만이다. 신탁 계약을 바탕으로 보험금이 지급된 첫 사례도 최근 등장했다. 고령화 현상이 가속화하고 상속 방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보험금 신탁시장이 갈수록 성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사망보험 대신 신탁 수요 증가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삼성 교보 한화 등 3대 생보사가 지금까지 맺은 보험금청구권 신탁계약액은 총 6715억원(지난달 말 기준)으로 집계됐다. 올해 들어 두 달여 만에 11.8% 증가했다. 삼성생명은 지난 17일 기준 누적 판매액 5000억원을 돌파했다.
신탁은 일정한 목적에 따라 재산의 관리와 처분을 다른 사람이나 기관에 맡기는 제도다. 사망보험금은 2024년 11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신탁 대상에 포함됐다. 보험금청구권 신탁은 가입자가 사망한 뒤 보험금을 받을 사람의 우선순위와 지급 시기, 비율 등을 미리 정해두는 상품이다. 계약은 통상 3000만원 이상부터 할 수 있다. 수익자는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등으로 제한된다.
보험금청구권 신탁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것은 사망보험금의 지급 구조와 맞닿아 있다. 사망보험금은 통상 일시금으로 지급돼 보험계약에서 정한 수익자에게 목돈이 한꺼번에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유족의 생활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상품인 만큼 보험금 규모가 수천만원대에서 시작하는 사례가 많고 중복 가입도 가능해 지급 시기와 방식, 수익자 범위를 미리 설계하려는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해 9월 기준 3사가 사망보험금으로 지급한 금액은 1조3973억원에 달했다.
시장이 확대되면서 보험사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고객이 사망보험금을 어떻게, 누구에게 지급할지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관련 수요가 빠르게 늘어서다. 고령화로 생명보험사의 주력 상품인 사망보험 수요가 예전 같지 않은 점도 인기 배경으로 꼽힌다. 도입 첫해인 2024년 말 기준 3사의 합산 계약액은 1416억원에 그쳤지만, 1년여 만에 4배 이상으로 불어났다.◇보험금 분할 수령도 가능삼성생명에서는 최근 보험금청구권 신탁의 첫 번째 지급 사례도 나왔다. 60대 여성 고객 A씨는 자녀 2명 중 딸(당시 35세)을 1억4000만원 규모 사망보험금 신탁의 수익자로 지정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후 A씨가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계약에 따라 딸이 보험금을 받게 됐다.
눈에 띄는 대목은 지급 방식이다. A씨는 보험금을 한 번에 주지 않고 분할 지급하도록 설계했다. 한부모 가정인 만큼 사후 재산 관리에 대한 고민이 컸기 때문이다. A씨의 뜻에 따라 딸은 사망 다음 날 5000만원, 1년 뒤 5000만원을 받고, 나머지 금액은 2년 후 지급받는다. 장례비와 생활비 등 자금 용도를 나눠 지급 시점을 설계한 것이다. 다른 가족과의 분쟁 가능성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보험금청구권 신탁은 가입자의 의지에 따라 보험금 활용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 폭이 넓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정 수익자나 법정 상속인에게 돌아갈 사망보험금을 신탁 구조로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며 “자녀에게 장애가 있거나 재산 관리가 어려운 경우에는 유족에게 심리적 안정감까지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