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네가 방탄조끼인지 뭔지래. (수군수군)”
돌아볼 ‘뒤’조차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전진’만 했는지도 모른다. SM, YG, JYP의 간판도 없던 아이돌. 자신들 말고 다른 연습생도 없는 작은 회사의 아이돌. 다들 다른 회사에 속해본 적 없어 이 회사가 최초인 아이돌. 그냥 아이돌이 처음인 아이돌. 2013년 6월 13일 데뷔. 그 후로 오랫동안 가요 프로그램 대기실 복도에서 7명은 고개를 푹 숙였다. 다른 아이돌 중에 아는 친구가 없어서 그냥 이렇게 7명만 똘똘 뭉쳐 다녔다.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타도 그저 7명이 함께 숙소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아이돌.
하루의 절반을 작업에 쩌 쩔어
작업실에 쩔어 살어 청춘은 썩어가도
덕분에 모로 가도 달리는 성공가도
- 방탄소년단 ‘쩔어’ 중
[방탄소년단(BTS) '쩔어']
하지만 외로울 리 없었다. 랩을 뱉고 춤을 추고 게임을 하면서 7명은 왁자지껄 자신들만의 세계 속에서 무척이나 바빴다. 연습도, 놀이도 평범한 유튜버처럼 스마트폰을 켜 세상과 공유했다. TV에서 안 불러주면 내가 TV를 만들면 될 일. 유튜브 채널 ‘방탄TV’는 그렇게 누구에게나 열린 24시간 예능 프로그램이자 친구들의 놀이터가 됐다. 뛰어난 촬영이나 편집이 없어도, 때론 메이크업 따위 없어도 ‘하이텐션’의 개구쟁이 일곱 명이 PD이자 작가요, 출연진이었다.
부산, 대구, 광주, 경남 거창, 경기 고양과 과천에서 모인 사내들. 서울 강남구 논현동 3층 합숙소로 어쩌다 모여든 이렇게 일곱은 17평 빌라에서 부대꼈다. ‘아 쩔어 쩔어 쩔어/우리 연습실 땀내’ 같은 가사는 로망도 판타지도 아닌 그냥 현실의 이야기. 자연스레 노래에 담아냈다.
이름은 Jung Kook 스케일은 전국
- 방탄소년단 'We Are Bulletproof, Pt. 2' 중
[방탄소년단(BTS) 'We Are Bulletproof Pt.2']
…이라고 큰소리쳤지만 어째 전국 제패는 안갯속 같아 보였다. 2013년 6월 데뷔 앨범 ‘2 COOL 4 SKOOL’의 첫 주 판매량은 772장.(772만 장 아님 주의) 그해 9월 후속작 ‘O!RUL8,2?’의 초동 판매량은 2,679장. 랩이 느는 속도보다 팬이 느는 속도가 느린 것만 같았다. 이 두 장의 앨범은 그래도 ‘듣보잡’ 신인그룹의 천의무봉 아크로바틱 댄스와 강렬한 힙합 사운드로 화제가 되며 팬층을 넓혀갔다. 연말 성적은 각각 가온차트 앨범 순위 65위와 55위. 그러나 이 정도로는 스포트라이트는커녕 방탄으로 막아낼 총탄조차도 본인들을 향하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켜 공유한 일상, 그 무수한 조각들인 ‘방탄 밤’ 같은 콘텐츠는 쌓이고 쌓여 방탄의 일상 유니버스가 돼줬고 새로 유입된 팬들이 끝없이 찾아보고 뒤적이며 이 궁금한 사내들의 역사와 맥락을 좇는 ‘짤방 바이블’ 같은 게 돼 주었다.
친근한 동생 같던 이들이 ‘본편’에선 또 확실히 ‘아이돌’이 됐다. 이게 ‘킥’이었다. 헝클어진 머리, 화장 안 된 얼굴로 까불던 멤버들은 무대 위, 뮤직비디오 안에선 환상적 존재가 돼줬다. 결국 방탄의 열쇠는 ‘힙합 아이돌’만큼이나 낯선, 이래저래 ‘아름다운 이율배반’이었다. 어쩌다 이들의 공식 트위터 계정 ‘@bts_twt’을 한 번 팔로우했다가 융단폭격처럼 쏟아지는 ‘깨알 콘텐츠’에 재미를 느끼던 이들이 마음까지 내주게 된 건 결국 음악의 힘 때문이었다.
보고 싶다 이렇게 말하니까
더 보고 싶다
- 방탄소년단 ‘봄날’ 중
[방탄소년단(BTS) '봄날']
별것 아닌 듯 툭 던지는 가사, 소담스러운 멜로디에 무심한 듯 툭툭 떨어뜨리는 보라색 감성에 세계의 젊은이들이 봄날 꽃잎처럼 흔들렸다. 한국어라고는 ‘안녕하세요’밖에 모르던 전 세계의 팔로어들은 ‘보고 싶다’를 검색하고 ‘봄날’을 번역하며 ‘김태형’ ‘박지민’ 같은 낯선 이름을 혀끝에 담고 귀로 부은 노래들을 공허한 가슴에 담기 시작했다.
2015년 5월 ‘I NEED U’로 국내 지상파 음악방송 첫 1위에 올랐다. 2016년 정규 2집 ‘WINGS’는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빌보드 200) 26위를 찍는 파란을 일으켰다. 국내에선 ‘초통령’ 소리를 들었지만 해외 반응은 이미 꼬마가 아니라 거인에 가까워져 갔다.
2017년 다섯 번째 미니 앨범 ‘LOVE YOURSELF 承 'Her'’가 빌보드 200의 7위에 오르더니 수록곡 ‘MIC Drop’은 싱글차트 18위에 들었다. 2018년, 정규 3집 ‘LOVE YOURSELF 轉 'Tear'’는 마침내 아시아 가수 최초로 빌보드 200 정상을 차지했다. 이후 모든 앨범은 이 자리를 놓치지 않는다.
내 모든 약점들은 다 숨겨지길
이뤄지지 않는 꿈속에서
피울 수 없는 꽃을 키웠어
- 방탄소년단 ‘FAKE LOVE’ 중
[방탄소년단(BTS) 'FAKE LOVE']
‘세이코에서 Rolex (Rolex), Axe에서 체조/내 손짓 한 번에 끄덕거리는 수만 명들의 고개’(Agust D ‘마지막 (The Last)’)는 더 이상 가사 속 허세가 아니었다. 그걸 뛰어넘는 현실이 됐다. 하지만 팬들이 달아준 날개가 올려준 ‘높이’와 큰 기업이 된 직장의 ‘무게’는 부담이 되기도 했다. ‘제 발로 들어온 아름다운 감옥’에서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ON’)라는 새로운 화두가 ‘힙합 아이돌’의 이율배반을 넘어선 차세대 아이돌의 고민이 됐다.
모회사 하이브의 상장에 즈음해 영국 작사가, 작곡가 두 명에게서 받은 노래 ‘Dynamite’는 아시아 가수로 57년 만에 미국 팝 시장의 마천루 꼭대기(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7명을 올려줬지만 구름 위가 곧 낙원은 아니었다.
몹시 아프네
세상이란 놈이 준 감기
덕분에 눌러 보는 먼지 쌓인 되감기
- 방탄소년단 ‘Life Goes On’ 중
[방탄소년단(BTS) 'Life Goes On']
팬데믹의 수렁 속에서 다시 초심을 탐색한 ‘BE’(2020년) 이후, 2022년 ‘찐 방탄회식’ 영상에서 RM은 “랩 번안하는 기계가 됐다. 영어를 열심히 하면 내 역할은 끝났다”면서 단체활동 중단을 시사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Dynamite’ 이후 ‘Butter’ ‘Permission to Dance’(심지어 공동 작곡가로 영국 팝스타 에드 시런이 참여) 등의 영어 곡을 연이어 히트시켰지만 이들 곡은 해외 작곡가가 다수 참여한 데다 통통 튀는 영미권 보이밴드 스타일의 전형에 가까웠고, 화나 있거나 처절했고 때로 우는 모습도 보였던 ‘자작 아이돌’로서 초·중기 방탄소년단의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희석되어 히트와 기록으로 맞바꿔져 있었다. 이후 멤버들은 ‘군백기(군 복무로 인한 공백기)’와 솔로 활동으로 서서히 흩어졌다.
그렇게 3년 9개월. 비틀비틀 흩어졌던 듯한 발걸음은 하나의 사각형 안에 모였다. 다시 숨을 가다듬고 ‘No More Dream’을 외치던 결기를 월드 투어 스테이지 위에 뿌린다. 결국 랩이다. 결국 노래다. 결국 무대다. 그리고 결국은 청춘의 연대다. ‘ARIRANG’이란 새 화두를 던진, 더는 소년이 아닌 일곱 명의 발끝은 이제 어디로 향할까. 세계의 무대가 열린다.
Forever we are young
나리는 꽃잎 비 사이로
헤매어 달리네 이 미로
- 방탄소년단 ‘EPILOGUE: Young Forever’ 중
[방탄소년단(BTS) 'EPILOGUE : Young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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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뮤직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