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러 잡주' AMD 시총 74배 키워…리사 수의 매직

입력 2026-03-20 13:28
수정 2026-03-20 13:29


2014년 10월 반도체 기업 사상 처음으로 여성 CEO가 탄생했다. 경력직으로 2년 전 입사한 44세의 반도체 엔지니어 리사 수였다.

리사 수가 CEO 자리에 오른 그해 AMD는 고사 직전이었다. 주가는 주당 2달러대까지 추락했고 주력 제품이었던 서버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점유율은 “반올림해도 0%”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26세에 이미 IBM 임원 자리에 올랐던 그는 회사를 폐업 위기에서 살려냈다. 이후 AMD는 CPU 시장에서 인텔을 제치고 GPU 시장에서 엔비디아를 위협하는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2.7달러였던 주가는 200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기업가치를 74배 가까이 끌어올린 것이다.

기술혁신으로 이뤄낸 실적이 시가총액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2014년 11억8000만 달러(약 1조4000억원)의 순손실 냈던 AMD는 리사 수가 CEO로 취임한 지 3년째 되는 해인 2017년부터 적자의 늪에서 벗어났다. 지난해에는 AI 가속기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사상 최대 순이익(연간 43억 달러)을 냈다. 제1원칙 ‘훌륭한 제품을 만든다’개발자 출신인 리사 수는 기본에 충실한 경영을 했다. 투자자들에게 지키지 못할 숫자는 내걸지 않았고 회사의 미래를 결정할 때는 반도체 개발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기술 경쟁력이 곧 AMD의 미래라고 생각했다. 주주, 고객과의 신뢰를 쌓기 위해 기술 로드맵도 다시 짰다. 들쭉날쭉하던 AMD의 제품 출시일을 관리하기 위해 생산주기를 다시 확립했다. 7%에 달하는 인력을 감축하며 구조조정에도 나섰다.

이어 개발자들을 모아놓고 게임기, 서버, PC, AI 등에서 모두 쓰일 수 있는 CPU를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가이드라인으로 한 가지만 제시했다. ‘훌륭한 제품을 만들라.’ 원팀이 된 연구개발팀이 만든 것은 가성비와 성능을 모두 챙긴 ‘라이젠 프로세서’다. 2017년 첫 출시한 라이젠은 적자와 흑자를 오가던 AMD를 되살린 AMD 사상 최고의 CPU로 평가받는다.

리사 수는 공식 석상에서 ‘닥터 리사 수’(리사 수 박사)로 소개된다. 회사 공식 홈페이지나 원문 보도자료에서도 리사 수 사장이나 의장이라는 표현 대신 박사 호칭을 전면에 내세운다. MIT 전기공학 박사 출신 엔지니어 CEO의 정체성을 강조한 것이다.

3월 18일 한국을 찾은 리사 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만나 HBM 공급 계약과 파운드리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해 말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방한처럼 국민적인 화제를 모으진 못했다. ‘훌륭한 제품을 만든다’는 그의 제1원칙처럼 실무적이었고 공급망부터 고객사까지 빈틈없이 챙긴 방문이었다. 화려한 스피치 대신 데이터와 기술 로드맵으로 이사회와 투자자를 설득해 온 그의 경영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났다. ‘라이젠’ 출시로 2017년 흑자전환AMD는 엔비디아가 사실상 독점해온 AI 반도체 시장에서 오픈AI ,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잇따라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동안 엔비디아가 주도해온 시장 구조에 균열을 내며 새로운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는 평가다.

AMD가 AI 가속기 개발에 나선 건 2018년이었다. 리사 수의 주도 아래 CPU 제품에만 의존하던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뛰었다. 2023년 AMD는 AI 가속기 출시를 본격적으로 선언했다. 리사 수는 2023년 3분기 실적발표 자리에서 “우리는 데이터센터 GPU 매출이 4분기에 약 4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이고 매년 증가하면서 2024년에는 관련 매출이 20억 달러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자신했다.

출시를 앞둔 AI칩 MI300A와 MI300X가 대량생산을 앞두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리사 수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과감한 숫자를 내놓는 건 이례적이었다. 리사 수의 자신감에 실적발표 다음 날 주가는 10% 가까이 급등했다.

올해는 ‘요타 컴퓨팅’을 화두로 제시했다. 리사 수는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 기조연설자로 나서 전 세계 컴퓨팅 용량이 5년 안에 2022년보다 1만 배 늘어난 10요타플롭스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AI 산업 성장에 따라 연산 성능을 1만 배 이상 높여야 한다”며 “폭발하는 컴퓨팅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CPU, GPU, 네트워킹 서비스를 한 번에 제공할 수 있는 턴키(일괄 공급) 솔루션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공개한 AMD의 신형 GPU ‘인스팅트 MI455X’는 엔비디아의 ‘베라 루빈’ 칩에 대항하기 위해 전작 대비 성능을 10배 이상 끌어올린 제품이다. 여기에 삼성전자의 고대역폭메모리(HBM4)가 탑재될 예정이다. AMD는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위한 ‘헬리오스(Helios)’ 랙 시스템도 선보였는데 헬리오스에 탑재될 고성능 D램 역시 삼성전자와 공동개발하기로 했다. 리사 수가 2014년 취임 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이유다. 26세에 임원 오른 IBM 떠나 AMD행조용한 경영 스타일과 달리 리사 수는 안전한 길을 선택하기보다는 모험을 즐기는 기업가 유형이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왜 AMD를 택했느냐’는 질문에 “이미 잘나가고 있는 기업은 ‘쉬운 선택지’지만 매력이 없다”고 답했다.

리사 수가 2012년 AMD로 향할 때에도 모두가 말렸다. 당시 그가 MIT 지도교수에게 거취를 상의하는 전화를 했는데 “진심이냐? 인텔에 도전하겠다는 거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리사 수는 “안 될 거 있나요(Why not)”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당시 AMD가 망가진 데에는 리더십 부재가 큰 역할을 했다. 5년 사이 AMD의 리더는 4번이나 바뀌었고 전략이나 일관성, 방향성까지 사라졌다. 2014년 바통을 이어받은 리사 수는 취임 첫날 직원에게 보내는 첫 서한을 작성했다. 당부 사항은 단 3가지였다.

1.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데 다시 집중한다.
2. 고객과 깊은 관계를 다시 구축한다.
3.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단순화한다.

당장 망할지도 모를 회사에 거창한 선언 대신 뚜렷하고 단순한 목표가 필요했다. 리사 수는 직원들에게 앞으로 모든 의사결정이 3가지 기준에 따라 이뤄질 것을 분명히 했다.

AMD 시가총액은 2022년 2월 처음으로 CPU 제국이었던 인텔을 추월했다. 올해는 AMD의 AI 모델이 헬스케어와 우주 등 하이테크 영역으로까지 확대됐다. 앱사이(Absci)는 AI를 활용한 신약개발로 탈모 및 난치병 치료 가능성을 제시했고 블루오리진은 통신 지연이 발생하는 ‘달의 뒷면’ 탐사를 위해 AMD 칩 기반의 자율 착륙 기술을 테스트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에는 메타와 앞으로 5년간 총 5GW(기가와트) 규모의 AI 반도체 제품을 공급한다는 초대형 딜을 체결했다. AI 핵심 공급망에서 영향력을 넓히며 AI 가속기 시장의 80~90%를 장악하고 있는 엔비디아를 추격하고 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