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 '언급'에…한국거래소, '50년 룰' 바꾸는 까닭은

입력 2026-03-19 20:00
수정 2026-03-19 21:13

"'주식을 오늘 팔았는데, 돈은 왜 모레 주냐'는 얘기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8일 열린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를 위한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필요하면 조정을 하는 의제 중 하나로 검토해보라"는 이 대통령의 제안에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국제적 동향을 잘 파악해 절대 늦지 않고, 오히려 선제적으로 청산·결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이들이 말한 건 '주식 결제주기'다. 현재 한국거래소 시스템은 주식을 팔면 계좌에 현금이 들어오는 데까지 2영업일이 걸리는 'T+2' 방식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이를 'T+1'으로 앞당기겠다는 한국거래소의 계획이 급물살을 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궁금증이 생긴다. 홍콩 등 아시아 선진 시장에서도 여전히 결제주기를 'T+2'로 유지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단축을 추진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돈 없어도 이틀 뒤 갚아도 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에 'T+2' 시스템을 도입한 건 197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 코스피가 생기기 전부터 약 50년간 주식 매매 체결 이후 2영업일 뒤에 실제 결제로 이어지는 방식을 취해왔다.

이 구조를 전략적으로 사용한 게 '미수거래'다. 미수거래는 전체 주식매입대금의 일부인 증거금만 먼저 납부하고, 나머지는 외상으로 처리하는 방식이다. 증권사에서 '증거금 30~40% 계좌'를 만들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예컨대 수중에 400만원만 있어도 주식 1000만원어치를 미리 살 수 있고, 이틀간 주가가 10% 오르면 나머지 대금을 갚으면 된다. 400만원으로 100만원을 벌었으니(25%), 1000만원을 모두 내고 같은 돈을 버는 것(10%)보다 수익률이 높다.

그 대신 주가가 하락하면 손실률도 그만큼 극대화된다. 심지어는 투자자가 빌린 돈을 못 갚는 경우도 생긴다. 이 때문에 증권사는 미수거래 시 결제불이행 위험을 낮추기 위해 한국거래소 등에 일종의 보증금(증거금)을 쌓아둬야 한다. ○'T+2' 이용한 반대매매 리스크 급증
주가 변동성이 커질수록 미수거래의 위험성은 커진다. 2021년 초 미국 '게임스탑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을 중심으로 개인투자자들이 게임스탑 주식을 대량 매수해 주가가 폭등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거래대금이 급증하자 미국 증권정산소(NSCC)는 증권사 로빈후드에 평소의 몇 배에 달하는 증거금을 요구했다. 조(兆)단위 증거금을 낼 돈이 없었던 로빈후드는 결국 호가창에서 '매수 버튼'을 없애는 극단적 선택에 나섰다. 개미들의 '패닉 셀링'에 나섰고 주가는 수직 낙하했다.

미국이 2024년 결제 시스템을 기존 'T+2'에서 'T+1'일로 하루 단축하게 된 배경 중의 하나다. 거래 체결과 실제 결제 사이의 시차를 하루 줄여, 그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변동성과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국내에선 비슷하게 2023년 영풍제지 사태가 있었다. 당시 영풍제지는 약 1년 만에 주가가 14배나 폭등하면서 개미들의 미수거래가 급증했다. 하지만 주가 조작 세력의 계좌가 묶이면서 주가가 하한가를 찍자 대규모 반대매매(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증권사가 주식을 강제 처분하는 것)가 발생했다. 당시 키움증권 한 곳에서만 4000억원이 넘는 미수금 손실이 발생했다.

최근에도 중동 전쟁의 여파로 국내 증시 변동성이 커지자 반대매매가 증가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코스피 랠리에 올라타기 위해 'T+2' 시스템을 활용한 '빚투'를 하다가, 증시가 급락하자 돈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져서다. 전쟁이 터진 직후인 지난 6일 하루에만 824억원에 달하는 반대매매가 발생했다. ○"최소 2~3년은 준비해야"
정부는 결제일을 단축하면 이같은 미수거래 리스크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T+1 추진은 주가 변동성과 거래량 증가에 대응해 결제 리스크를 감소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마냥 달가워하지만은 않는 분위기다. 가장 큰 우려점은 '외국인 투자 위축'이다. 현재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 직접 투자하기보다 해외 운용사와 글로벌 브로커, 국내 상임대리인 등 몇 단계를 거쳐 예탁결제원에서 대금을 결제하는 복잡한 구조가 대부분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국내 고객 입장에서는 결제일이 빨라지다보니 편리해질 것"이라면서도 "외국인 투자자는 환전 및 자금 이체 등 처리 단계가 많기 때문에 하루 안에 끝내기 쉽지 않고, 시스템 정비와 인력 충원에 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며 "T+1 시스템은 당장 도입하기보다는 최소 2~3년은 찬찬히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했다.

이선아/오현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