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인력 구조의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저출산과 고령화, 산업 고도화, 교육과 일자리 간 미스매치는 오래전부터 반복적으로 지적돼 온 과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상황은 과거의 연장선에 놓인 변화라기보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전환의 임계점에 가깝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말하고, 기업은 같은 시간 “사람이 없다”고 호소한다. 서로를 향한 이 상반된 목소리는 교육과 산업의 속도가 어긋나 왔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신호다.
현장으로 갈수록 이러한 괴리는 더욱 선명해진다. 숙련 기술 인력은 고령화와 함께 빠르게 현장을 떠나고, 산업 구조는 전기차·반도체·친환경 기술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도 달라졌다.
이제는 얼마나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지가 아니라, 현장을 이해하고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고숙련 역량을 갖추었는지가 핵심 기준이 되고 있다. 하지만 대학 중심의 학문 교육은 여전히 이론과 자격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그 간극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일자리 ‘부족’ 아닌 ‘불일치’
이 변화의 방향을 가장 직설적으로 경고해 온 인물 중 한 명이 일론 머스크이다. 그는 AI와 자동화 기술이 확산되면 기존의 많은 직무가 사라질 것이라고 반복해 강조해 왔다. 하지만 그의 발언을 단순한 ‘일자리 감소’로 받아들이는 것은 핵심을 놓치는 해석이다. 문제는 일자리의 숫자가 아니라 형태다. AI는 반복적이고 표준화된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는 반면, 현장에서 판단하고 책임지는 역할, 실제 작업을 이해하는 인력의 가치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기술은 일자리를 없애는 동시에, 인간에게 요구되는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력 양성 시스템은 이러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청년들은 준비해 온 경로로 진입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기업은 즉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구하지 못한다.
오늘날의 구직난과 구인난은 일자리 부족이 아니라, 변화한 일자리에 맞는 인재를 길러내지 못한 데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에 가깝다.
ESG 시대의 인재 전략, 아우스빌둥
이 지점에서 독일의 이원화 직업교육제도인 아우스빌둥은 하나의 분명한 방향을 제시한다. 아우스빌둥은 교육과 일을 분리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배우고 기업 현장에서 익히는 과정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훈련생은 단순한 교육 대상이 아니라 성장 중인 현장 인력으로 대우받고, 기업은 단기적인 인력 활용이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의 관점에서 교육에 참여한다. 이는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간에게 남겨질 역할을 가장 현실적으로 준비하는 방식이다.
아우스빌둥의 의미는 단순한 직업교육 제도를 넘어선다. 이는 교육과 산업을 연결하는 인력 양성 구조이자, ESG 관점에서 기업이 인재를 어떻게 책임 있게 육성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기도 하다. 청년에게 실질적인 직업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사회(S) 영역의 요구를 충족하고, 전문 인력 양성을 기업의 책임 영역으로 구조화한다는 점에서 거버넌스(G) 측면의 의미도 갖는다.
기업 경영 측면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점점 더 중요한 전략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사람 뽑기가 쉽지 않다”는 말은 이제 많은 경영진의 공통된 고민이다.
경력직 인재의 처우 수준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고, 채용 이후 비교적 이른 시점에 이탈이 발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 결과 기업들은 반복적인 채용 공고와 선발 과정, 그에 수반되는 비용 부담을 감내해야 하는 구조에 놓여 있다. 인력 확보는 인사(HR) 부서의 운영 과제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비용 구조와 지속 가능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영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기업들은 필요한 인재를 외부 노동시장에서 채용하는 방식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숙련 인력 공급이 구조적으로 제한된 상황에서 외부 채용 중심 전략은 인재 시장의 가격 변동성과 높은 이동성에 기업을 노출시킨다. 채용 비용의 상승과 조기 이탈로 인한 재채용 부담은 반복적으로 누적되고, 조직 운영의 예측 가능성은 낮아진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독일 기업들의 인재 운영 사례를 살펴보면, 아우스빌둥은 단순한 교육 제도가 아니라 기업 내부에 필요한 숙련 역량을 축적하기 위한 인재 양성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시 투입 가능한 인력을 외부 시장에서 확보하는 대신, 기업이 필요로 하는 직무 기준에 맞춰 인재를 직접 설계하고 장기적으로 육성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접근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착한 기업’의 선택이라기보다, 장기적인 비용 구조와 리스크를 고려한 합리적인 경영 판단에 가깝다. 아우스빌둥을 통해 성장한 인력은 조직 문화와 업무 프로세스, 현장 맥락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초기 적응 기간이 짧고 현장 기여도 역시 빠르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 초기에는 교육과 훈련에 일정한 비용이 발생하지만 반복적인 채용 실패나 숙련도 부족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를 고려하면 장기적인 경제성은 상대적으로 높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ESG 시대의 인재 생태계와 새로운 커리어 경로 주목
아우스빌둥은 청년 개인의 커리어 관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 사회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는 오랫동안 ‘유명 대학 진학’이라는 경로를 중심으로 설명돼 왔다. 최근에는 출발점 자체보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경험을 축적했는가가 개인의 성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아우스빌둥의 중요한 특징은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현장 경험을 통해 직업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훈련생은 학교에서 이론을 배우는 동시에 기업에서 실제 업무를 수행하며, 자신이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어떤 환경에서 성장하는지를 직접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 고객, 품질, 성과에 대한 책임을 경험하며 직무에 대한 이해를 쌓는다. 이러한 경험은 단기적인 취업 성과보다 장기적인 커리어 설계에 더 깊은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독일 기업들 가운데에는 아우스빌둥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오랜 시간 현장 경험과 역량을 축적한 뒤 조직을 이끄는 위치에 오른 사례들이 적지 않다. 이는 아우스빌둥이 단순한 기술 교육이 아니라, 현장을 이해하는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경력의 토대를 제공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우스빌둥은 모든 청년을 위한 유일한 해답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청년들에게 또 하나의 ‘존중받는 선택지’를 제공하는 제도라는 점이다. 일류 대학이라는 단일한 학벌 기준을 넘어, 다양한 출발선 위에서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회가 인정할 때 청년들은 자신의 적성과 가능성에 맞는 커리어를 보다 주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인력 구조의 위기는 단순한 노동시장 문제가 아니라 산업 경쟁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산업은 이미 다음 단계로 이동하고 있지만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제 기업과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질문은 하나다. 필요한 인재를 외부에서 찾을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길러낼 것인가에 있다.
아우스빌둥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직업교육 정책의 영역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는 인사 정책을 넘어 CEO의 전략 테이블에서 다뤄져야 할 경영 의제이며, 동시에 기업이 사회와 함께 지속 가능한 인재 생태계를 구축하는 ESG 경영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김영진 주한독일상공회의소 아우스빌둥팀 부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