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3월 18일 09:4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최근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되면서 집단소송, 주주대표소송 등 손해배상 청구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다. 선진국에서 임원배상책임보험(D&O 보험)은 단순한 보험 상품을 넘어, 지배구조와 리스크 관리, 인재 확보와 연계된 종합적 경영전략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여전히 단순한 보험 상품으로만 고려하고 있다.
D&O 보험은 임원의 업무상 과실이나 의무 불이행으로 주주 및 제3자에게 금전적 피해가 발생했을 때 손해배상금과 소송 비용을 보장하는 제도로, 두 가지 핵심 보장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회사가 먼저 임원의 면책·비용을 보전한 후 보험사가 그 지급액을 회사에 보전해주는 회사보상담보(SIDE B)다. 둘째는 회사가 법적·재무적으로 임원을 보호할 수 없는 경우 임원 개인에게 직접 보험금을 지급하는 개인보상담보(SIDE A)다. ‘약관’ 아닌, ‘임원보장 구조’의 문제미국 D&O 보험 약관은 회사 차원의 임원 보호 체계가 효과적으로 작동한다는 가정하에 사기, 부정행위 등 고의적 행위에 대한 면책을 중심으로 설계되며, 중과실(gross negligence)을 별도 면책 사유로 두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전제가 한국의 법 체계(고의·과실·중과실)와 충분한 검토 없이 미국 보험을 번역해 사용하면서 구조적 문제로 번지고 있다.
국내 D&O 보험의 근본적 한계는 회사 차원의 임원 보호 체계가 거의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보험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기업들이 ‘보험 약관의 문구 문제’와 ‘회사 자체의 임원보호 정책 수립’을 별개 사안으로 접근하면서, 임원 보호에 대한 원칙 수립은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다.
경영진은 정관에 임원 면책 및 비용 보전 조항이 마련돼 있는지, 실제 소송에서 이를 활용한 적이 있는지, 방어비용 선지급 절차와 승인 체계가 명확한지, 그리고 D&O 보험의 구조와 변경사항을 이사회나 감사위원회가 정기적으로 보고받고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회사보상 중심의 구조가 필요한 이유미국과 영국에서는 D&O 보험이 회사보상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임원이 직무 관련 소송이나 책임을 지게 될 경우, 먼저 회사가 정관과 내부 정책에 따라 1차적으로 면책과 비용 보전을 실시하고, 회사의 자기부담금 초과분을 보험이 보전하는 구조다. 자기부담금을 설정하는 이유는 보험료를 낮추는 효과도 있지만, 회사가 책임지고 위험 관리를 하겠다는 의지이며, 개인보상은 회사가 법적 또는 재무적으로 임원을 보호할 수 없는 예외적 상황에서만 작동한다.
이렇게 구분하는 이유는 ‘임원 보호의 출발점은 회사’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다. 또한 합리적인 정보 수집과 적절한 절차에 기반한 정상적인 경영판단에 대해서는 결과와 무관하게 보호하되, 사기나 의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만 엄격한 책임을 묻겠다는 지배구조 철학과 맞닿아 있다.
이와 관련해 이사회는 회사 규정에 정상적 경영판단에 대한 임원 보호 원칙과 범위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는지, 이런 내부 면책 정책이 D&O 보험의 회사보상 체계와 유기적으로 연결돼 하나의 통합된 보호 구조를 이루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국내 현실: 회사보상은 작동하지 않고 개인보상 제한적한국에서는 정관에 임원 면책 조항이 없거나, 실제 분쟁에서 적극 활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사회는 임원 면책을 ‘주주 눈높이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막연한 우려로 부담스러워하며, 명확한 원칙 대신 판단을 미루거나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회사 차원의 보상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개인보상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된다면 실질적인 보호효과는 떨어지고 보험료만 높아질 수 있다.
일례로 사외이사가 참여한 의사결정이 주주대표소송으로 이어졌을 때, 정관상 방어비용 보전 조항이 없거나, 실제 절차나 기준이 없어 초기 몇 개월간 임원이 개인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D&O 보험이 있더라도 회사보상이 작동하려면 회사의 선지급과 면책 결정이 선행돼야 하는데 이것이 없으면 임원 보호는 지연된다. 결국 이사회는 ‘소송 리스크’보다 ‘혼자 방어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사외이사와 이사회는 최근 5년간 분쟁이나 조사 과정에서 회사가 임원 방어비용을 선지급한 사례가 실제로 있었는지, 지급 기준과 절차가 명문화되어 있었는지, 개인보상 중심의 현재 구조에서 소송 초기 단계 임원이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보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현실적으로 시뮬레이션해야 한다. 보장한도 확대를 넘어선 종합적 접근 필요상법 개정에 맞춰 미국 상장사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치는 보장 한도를 늘리는 것은 임원의 책임경영 활동을 보호하는 의미 있는 출발점이다. 하지만 이는 사후적 대응에 그칠 수 있다. 정관과 내부 규정을 통한 회사의 면책 구조, 자기부담금을 전제로 한 회사보상 체계, 예외적 안전망으로서의 개인보상이라는 기본 설계가 함께 정립돼야 한다.
정교하게 설계된 D&O 보험과 회사 면책 구조는 ‘소송 방어 수단’을 넘어 이사회가 장기적이고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하는 심리적 안전망이 되며, ‘주주에게 예측 가능한 책임과 보호의 기준을 제시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이는 기업가치 제고, 인재 확보, 투자자 신뢰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한다.
일부 기업은 이미 한도 증액을 넘어 정관과 내부 규정상 임원 면책 조항, 방어비용 선지급 기준과 절차를 담은 임원 보호 정책, 그리고 개인보상과 회사보상 구조 및 자기부담금과 한도를 포괄하는 D&O 보험 체계를 하나로 묶어 종합적으로 점검하기 시작했다. 지배구조·리스크관리·인재전략과 연결된 D&O 보험한국 D&O 보험 시장의 한계는 미국 보험증권을 번역한 약관을 일부 수정하는 방식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다. 문제의 본질은 기업이 ‘임원 보호 구조를 어떤 원칙과 기준에 따라 설계·운영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미뤄온 데 있다. D&O 보험은 단순한 보험상품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임원보장 구조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무 경험을 갖춘 보험사를 선별하는 동시에, 보험회사의 시각이 아닌 기업 중심의 판단을 위해 전체 구조에 정통한 전문가의 조언을 병행하는 것이 필수다.
D&O 보험은 지배구조(이사회 역할·책임 구조), 리스크 관리(소송·규제·평판 리스크 대응), 인재 전략(우수한 경영진·사외이사 유치·유지)과 긴밀히 연결된 인프라다. 이사회와 경영진은 ‘우리 회사의 D&O 보험와 임원 보호 구조는 단지 보험 하나를 들어둔 상태인가, 아니면 지배구조·리스크 관리·인재 전략과 연결된 ‘설계된 선택’인가?’를 질문해봐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보험회사와 기업이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 상법 개정 이후 한국 기업이 보다 성숙한 책임경영 체계를 구축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