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없으면 큰일난다"…글로벌 기업 회장님들의 '韓 사랑'

입력 2026-03-20 12:19
수정 2026-03-20 12:40
[비즈니스 포커스]



“한국이 글로벌 기업 CEO들의 필수 방문 코스로 떠오르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에 이어 리사 수 AMD CEO까지 연이어 방한하면서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완전히 달라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과거 이들은 단순히 시장을 점검하거나 의례적인 인사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더 이상은 아니다. 원활한 공급망 구축을 위한 한국 기업과의 협업 모색 등 ‘생존을 위한 협상’을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다.

우리나라가 단순한 제품 판매처를 넘어 AI(인공지능)와 반도체, 모빌리티 등 미래 산업의 명운을 쥔 ‘핵심 파트너’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CEO들의 방한 러시는 이미 지난해부터 예견된 흐름이었다. 세계 AI 반도체 선두주자들이 모두 한국을 찾은 것. 젠슨 황 CEO를 비롯해 샘 올트먼 오픈AI CEO,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등이 대표 격이다. 절박함이 만들어낸 치맥 회동?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이들의 방문 목적이다. 이들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이유는 명확하다. 한국 기업과의 견고한 협력 없이는 글로벌 공급망 전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최근 방한한 젠슨 황 CEO와 리사 수 CEO의 행보 역시 철저히 ‘생존을 위한 협상’에 맞춰져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반도체 기술의 정점인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있다. AI 가속기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한 엔비디아와 그 뒤를 맹렬히 추격 중인 AMD에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은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다. 특히 AI 칩의 성능을 좌우하는 HBM 분야에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업계에서는 HBM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차세대 AI 칩 출시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젠슨 황 CEO가 직접 한국을 찾아 한국 기업인들과 ‘치맥 회동’을 하며 파격적인 스킨십을 강화한 것도 그만큼 한국 기업과의 파트너십이 절박하다는 방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질세라 리사 수 CEO 역시 첫 방한에서 삼성전자, 네이버 등 국내 다양한 기업인들을 직접 찾아 전방위적인 협력 확대를 공식화했다. 엔비디아의 독주 속에서 HBM과 파운드리 협력을 강화해 차세대 AI 칩 생산 동력을 확보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설계 기업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초에는 올트먼 CEO와 저커버그 CEO 역시 한국을 찾아 삼성전자, SK그룹 등과 연쇄 회동을 했다. 이들은 자체 AI 칩 생산을 위한 이른바 ‘AI 반도체 동맹’ 구축을 타진하며 한국의 강력한 IT 인프라와 제조 역량을 활용한 서비스 협력을 구체화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전 세계 AI 산업의 향방을 결정짓는 전략적 요충지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했다. AI 반도체 수요 확대와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축으로 부상하면서 해외 기업들의 협력·투자 논의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 시대를 앞둔 자동차산업에서도 한국은 필수 방문지로 꼽힌다. 뛰어난 배터리 및 전장 기술력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 완성차 업체 CEO들의 방한 주기도 잦아지고 있다. 투자자들도 주목하는 거물들의 행보예컨대 작년 11월에는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그룹 회장이 한국을 방문해 국내 주요 기업들과의 협업을 강화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만나 차량용 반도체, 고해상도 OLED 디스플레이, 배터리 협력을 논의했다. 특히 삼성SDI와의 새로운 배터리 공급 파트너십 가능성이 주목받았다. 그는 또 LG전자, LG에너지솔루션, LG디스플레이 등 주요 계열사 경영진과 만나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구현을 위한 인포테인먼트 및 차세대 전장 부품 협력을 다졌다.

지난 1월에는 마르쿠스 셰퍼 CTO가 뒤이어 방한하여 한국 기업들의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기술 경쟁력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등 벤츠의 ‘한국 사랑’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이 전기차 플랫폼 공급망의 핵심 기지로 자리 잡고 있음을 시사했다.

명품 업계 CEO들의 한국행도 이어질 전망이다. 패션 업계에 따르면 루이비통·디올·펜디 등 70여 개 브랜드를 보유한 LVMH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단이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 방한을 검토 중이다.

아르노 회장의 방한은 지난해 3월 이후 약 1년 만이다. 당시 그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등 유통가 수장들과 릴레이 회동을 하며 한국 시장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드러낸 바 있다.

이번 방한 행렬은 LVMH에 그치지 않는다. ‘명품 중의 명품’으로 불리는 에르메스의 CEO와 구찌·생로랑 등을 거느린 케어링그룹의 신임 글로벌 CEO 루카 데 메오 역시 3월 말 한국 방문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명품업계의 세 축을 담당하는 수장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한국을 찾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한국이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명품 시장의 ‘핵심 거점’으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인의 1인당 명품 소비액은 약 325달러(약 43만원)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미국과 중국을 제친 수치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업계에선 한국 소비자의 까다로운 눈높이와 높은 구매력은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신제품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척도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한국은 인당 명품 소비액 세계 1위를 기록할 만큼 브랜드 가치를 증명하기에 매력적인 시장이다.

주식 투자자들은 글로벌 CEO들의 방한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들이 방한을 통해 다양한 국내 기업들과의 협업 계획을 내놓고 있어서다. 이들과의 협업 강화는 곧 국내 기업들의 매출 증대와도 직결된다. 이들의 입과 행보에 관련 기업들의 주가도 들썩이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