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분쟁 비용, 재무전략으로 인식 전환해야"

입력 2026-03-19 08:46
수정 2026-03-19 09:33


"기업 분쟁 비용은 일회성 비용이 아닙니다. 전사 차원의 필수적인 운영 비용이자 재무 전략 영역으로 봐야 합니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26 글로벌 통상 분쟁 대응 포럼'에서 이태헌 리틱에쿼티파트너스 외국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 기업은 높은 대외 의존도와 글로벌 시장 확장 전략으로 분쟁 노출도가 구조적으로 높다"며 "시장 점유율이 높아질수록 분쟁 위험도 함께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상의와 리틱에쿼티가 공동 주최한 이번 포럼에서는 국내 기업의 분쟁 비용 조달 방식으로 제삼자 펀딩(TPF·Third Party Funding)이 조명됐다. TPF는 분쟁 양 당사자 외의 펀더(funder)가 분쟁 비용을 대는 기법이다. 분쟁에서 승소하거나 합의할 경우 분쟁 가액의 일부를 가져가는 구조다. 미국이나 호주 등 영미권 법률 시장에서 발달했다. 리틱에쿼티는 TPF 자문사다.

글로벌 기업들이 자본력을 바탕으로 '장기전'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중견·중소기업들은 분쟁에 휘말릴 경우 비용 부담이 크다. 국제 중재나 미국 소송에서는 변호사 비용뿐만 아니라 디스커버리(증거개시) 대응과 기업 임직원 업무 공백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도 많다.

이 외국변호사는 국내 기업의 TPF 활용 방안도 소개했다. 그는 "해외 사업으로 글로벌 분쟁이 빈번한 대기업 그룹사에서는 복수 사건을 묶어 리스크를 분배하는 포트폴리오 펀딩 모델이 적합하다"고 조언했다. 또 "국내 중견·중소기업들은 전략적으로 활용해 대기업과의 분쟁 대응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했다.

TPF 회사들도 철저한 검증을 거친다. 미첼 디어니스 옴니브릿지웨이 투자 매니저는 분쟁 투자 핵심 요소를 승소 가능성, 경제성, 회수 가능성 세 가지로 꼽았다. 그는 "펀딩 파트너를 선택할 때는 단순히 자금 규모뿐만 아니라 트랙 레코드, 전문성, 글로벌 경험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최근 한국에서도 TPF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말했다.

펀딩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분쟁 전략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루스 스택풀무어 옴니브릿지웨이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TPF의 장점은 상대방에게 독립적인 제삼자가 내 사건을 지원한다는 메시지를 준다는 것"이라며 "심리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분쟁 가치를 평가해 승소 가능성은 물론 결과에 대한 확률 분석을 거쳐 순현재가치(NPV)를 산출한다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국제 분쟁에서는 패소를 넘어 집행 리스크도 크다는 설명이다. 집행이란 중재 승소 판정이나 법원 승소 판결을 실제로 이행하는 과정을 말한다. 버포드캐피탈, 옴니브릿지웨이 등 글로벌 대형 TPF 회사들이 분쟁 서비스까지 함께 제공하는 이유다.

변섭준 김앤장 외국 변호사는 "계약 단계에서부터 상대방 기업들이 가진 자산을 파악하고 실사하는 준비가 필요하다"며 "어느 나라에서 집행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사전에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