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AMD는 20년 된 ‘깐부 동맹’이다. 삼성전자가 2007년 AMD 그래픽 칩 ‘HD2000’에 전용 메모리(GDDR4)를 공급하면서 맺어진 인연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주춤한 지난해에도 AMD는 공급망을 끊지 않으며 끈끈한 관계를 지속했다.
최근 삼성전자의 HBM 경쟁력이 올라오자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는 삼성전자 한국 사업장을 찾아 협력 관계를 더욱 강조하고 나섰다. 메모리를 넘어 차세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까지 협력 범위를 넓히려고 한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아우르는 세계 유일의 ‘턴키’ 전략을 사업 확장 기회를 잡고, AMD는 TSMC 의존도를 낮추면서 원가 경쟁력까지 확보하는 공급망을 갖추며 ‘윈윈’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동맹’ 강조한 리사 수삼성전자는 18일 경기 평택 사업장에서 AMD와 인공지능(AI)용 메모리 협력을 확대하는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수 CEO는 이날 삼성그룹 영빈관인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서 만찬을 함께하며 협력 방안을 구체화했다. 수 CEO는 “삼성전자가 AI 가속기에 장착하는 HBM4 우선 공급업체로 지정됐다”고 밝혔다. 이번 협약으로 삼성전자는 AMD가 올 하반기 출시할 AI 칩 ‘인스팅트 MI455X’에 HBM4를 공급하며 협력 관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삼성전자와 AMD는 20년 전부터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주는 혈맹으로 불렸다. 특히 지난해 이들의 동맹은 더 단단해졌다. AMD는 당시 출시한 AI 반도체 ‘MI350’과 ‘MI355X’에 삼성전자 5세대(HBM3E) 제품을 활용했다. 삼성전자의 HBM3E 성능이 경쟁사에 뒤처졌다는 평가가 나올 때였지만 삼성 제품을 선택한 것이다.
수 CEO가 이번에 방한한 것은 더 이상 삼성전자 HBM이 ‘AMD만의 것’이 아님을 감지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D램 재설계 등 기술력을 회복하기 위해 뼈를 깎아온 삼성전자가 올해 간판 제품인 HBM4로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 베라루빈 공급망을 메모리업계 최초로 뚫으면서다. 올해 엔비디아는 삼성전자의 HBM 활용에 소극적이던 기존 입장과 달리, 적극적으로 공급을 요청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수 CEO가 동맹 관계를 확인하는 동시에 엔비디아에 견제구를 날리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파운드리까지 협력AMD는 이날 삼성전자와의 회동에서 HBM은 물론 AI 서버를 제어하는 중앙처리장치(CPU) 헬리오스를 보완하는 서버용 D램도 삼성에서 공급받기로 했다. 또 AMD의 차세대 칩 생산을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에 맡기는 방안을 논의했다. 그동안 AMD는 메모리에선 삼성전자와 끈끈한 협력을 해왔지만 파운드리에선 주로 TSMC 공정 라인을 이용해왔다. 이런 관행을 깨고 삼성전자 파운드리와의 협업이 본격화한다면 2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의 최첨단 시스템 반도체 협력이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파운드리 협업은 두 회사에 시너지로 작용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메모리(HBM)→파운드리(시스템 반도체)→최첨단 패키징(여러 칩을 한 칩처럼 작동하게 하는 공정)까지 반도체 전 생산과정을 아우르는 세계 유일의 턴키 전략으로 칩 제조 원가를 낮출 수 있다고 강조한다.
AMD 역시 TSMC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TSMC는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70% 내외의 압도적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지만 이 회사에 수요가 몰려 고객사들의 가격 부담이 올라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의 저렴한 턴키 솔루션을 활용해 엔비디아와의 칩 가격 경쟁에서 AMD가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수 CEO는 이날 최수연 네이버 대표를 만나 AI 반도체 협력을 확대하는 MOU를 맺었다. 양사는 네이버 AI 모델 ‘하이퍼클로바X’ 운영에 최적화된 AI 인프라를 구축 하기로 했다.
강해령/유지희 기자 hr.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