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을 이용해 힘을 덜 들인 ‘완전하게 내 것이 아닌 글’을 써낸다면, 글이 나아져도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태도에 관하여>, <평범한 결혼생활> 등으로 20여 년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임경선 작가가 17일 ‘아르떼 살롱’ 무대에 올랐다. ‘누구나 쓰는 시대에, 왜 쓰는가를 묻다’를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약 40명이 참석했다. 아르떼 살롱은 한국경제신문의 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arte)가 운영하는 오프라인 강연 프로그램이다.
이날 행사는 신작 에세이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을 중심으로 글을 쓴다는 것과 작가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짚는 자리였다. 임 작가는 최근 출판계의 화두인 AI 활용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필터를 끼우지 않은 자신의 못난 얼굴까지 마주하는 것이 창작의 출발”이라며 “날것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예술의 본질인데, AI로 매끈하게 다듬어진 텍스트가 넘쳐나는 것은 그 본질과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 글자 한 글자를 오래, 힘들게 써 내려가는 과정 자체에 가치가 있다”며 “문체를 흉내낼 수는 있어도 창작자가 겪는 고통과 희열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글쓰기의 출발점에 대해서는 “독자를 생각하는 순간 작가로서 망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아무도 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쓰고 싶은 것을 써야 한다”며 “독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존재이고, 같은 글도 전혀 다르게 읽힌다”고 했다.
글쓰기의 핵심으로는 ‘진심’과 ‘집요함’을 꼽았다. “처음부터 잘 쓸 수는 없지만, 잘 쓸 때까지 계속 써야 한다”며 “그 지점까지 도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재능이나 환경도 영향을 미치지만, 결국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쓰기 강의와 작법서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선을 보였다. 그는 “지나치게 친절하고 응원 일색인 글쓰기 담론은 현실을 가린다”며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언급했다.
“겉으로는 누구나 쓸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끝까지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냉정하게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글쓰기는 결국 버티는 사람만 남는 일”이라고 했다.
글쓰기와 삶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글은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며 “자녀 입시를 겪던 시기의 글은 더 거칠고 단호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글에 몰입하다 보면 재테크나 자녀 교육 같은 일들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런 현실 역시 함께 감당해야 하는 것이 삶”이라고 말했다.
또한 집필과 일상의 경계를 오가며 예민함이 커지는 순간을 겪기도 한다며 “집필 중에는 스스로가 날이 서 있어 창피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날 현장에서는 작업 방식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임 작가는 “노트북을 켜면 바로 글을 쓴다”며 “별도의 예열 과정이나 마음의 준비는 필요 없다”고 했다.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 자체가 글쓰기를 미루는 핑계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극심한 집중 과정에서 불안을 느낄 때는 호흡을 조절하거나 병원을 찾는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균형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청중들과의 질의응답에서는 자신이 지향하는 문학적 취향도 드러냈다. 줌파 라히리와 마르그리트 뒤라스를 언급하며 “세련되고 간결하면서도 밀도 높은 글”에 대한 선호를 밝혔다. 이는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처럼 명징하고 단단한 문장을 추구하는 그의 작가관과 맞닿아 있다.
그는 끝으로 “글쓰기는 결국 자기 책임의 영역”이라며 “자신의 한계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사람에게만 기회가 온다”고 말했다. “10을 하면 그중 1만 보일지라도, 그 과정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로 이날 대화를 마무리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