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에게 내 사진을 보여주면 AI는 나를 어떻게 인식할까. ‘학생’, ‘회사원’ 정도면 다행이다. ‘실패자’, ‘도벽환자’, ‘알코올 중독자’라는 답이 돌아올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걸 작품으로 증명한 작가가 있다. 미국 출신의 미디어 아티스트 트레버 페글렌(52)이다.
18일 LG와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은 올해 ‘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로 페글렌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LG 구겐하임 어워드는 매년 기술을 활용해 예술적 혁신을 이룬 작가를 선정해 주는 상으로, 올해 4회째를 맞는다.
페글렌은 AI와 디지털 기술이 사람을 어떻게 분류하는지를 작품으로 보여줘 주목을 받았다. 대표작 ‘이미지넷의 얼굴들’(2022)에서 AI는 카메라 앞에 선 관객을 실시간으로 분류한다. 이 AI는 '이미지넷'이라는 대규모 학습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데, 데이터 자체에 편견이 들어 있어 황당하거나 모욕적인 결과가 나올 때도 많다. 멀쩡한 사람이 얼굴만으로 '범죄자'나 '패배자'로 분류되는 방식이다. AI를 잘못 사용하면 얼마나 엉터리로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할 수 있는지를 관객에게 직접 체험시켜주는 작품이다. 작품이 공개된 뒤 이미지넷 측은 문제가 된 분류 체계를 전면 수정했다.
페글렌은 1974년 미국 메릴랜드주 출생으로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미술을 전공한 뒤 버클리대에서 지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7년 '천재들의 상'으로 불리는 맥아더 펠로십에 선정됐고, 2018년엔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을 수상했다. 작품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한국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와 광주비엔날레, 백남준아트센터 등에서 전시를 진행한 적이 있다.
국제 심사단은 8주간의 심의를 거쳐 24명의 후보 중 페글렌을 최종 선정했다. 심사단은 "페글렌은 거대언어모델(LLM) 등장 이후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를 확장해 왔다"며 "기술에 대한 비판적 탐구와 윤리적 가치를 일깨운 이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라고 평가했다. 축하 행사는 오는 5월 14일 뉴욕에서 열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