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업체가 드론과 미사일 등에 쓰이는 방위산업용 특수 배터리를 올해부터 미군에 본격적으로 납품한다. 미 전쟁부(국방부)는 그동안 써온 중국산 배터리 완제품과 소재 공급망을 한국 등 동맹국 중심으로 재구축하는 전략을 본격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란전쟁 등 실전에서 한국산 방산 제품의 우수성이 확인되자 국내외 중소·중견기업도 펜타곤의 러브콜을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 군용 배터리 찾아 방한한 美 전쟁부17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비츠로셀, 리베스트, 유뱃, 비이아이(BEI), JR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중소·중견 배터리업체 5곳은 지난주 방한한 전쟁부 및 방산업체 경영진과 비공개 회의를 잇달아 열었다. 전쟁부는 미군의 핵심 무기로 부상하는 드론과 미사일 등에 들어갈 차세대 특수배터리를 공급받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면담한 일부 기업은 작년 말부터 배터리 셀 납품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기업도 공급 계약을 체결하거나 협의하고 있다. 이들이 공급할 배터리 관련 제품은 연간 수천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미국 측은 이날 면담에서 배터리 완제품뿐 아니라 양극재, 음극재, 단열재 등 핵심 소재까지 비중국산을 쓸 것을 강하게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국방수권법에 따라 지난해 말부터 중국산 방산 제품·소재 수입을 본격 규제하기 시작했다”며 “특히 배터리 소재까지 3년 내 100% 비중국산으로 전환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 우크라·이란 전쟁 확산에 ‘탈중국’ 속도배터리업계는 전쟁부 관계자들이 군용 배터리 공급업체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것에 놀라는 분위기다. 미군이 면담한 업체들은 코스닥시장 상장 업체인 비츠로셀을 제외하면 매출 500억원 미만 중소기업이다. 미군에 무기를 공급하는 글로벌 방산업체는 통상 다양한 방산 계열사를 거느린다. 연간 매출은 수십조원, 수백조원에 달한다.
업계에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이란 전쟁이 잇달아 발발하면서 크기가 작고 내구성이 뛰어난 군용 배터리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쟁부가 요구하는 까다로운 조건을 맞출 대안이 없어 국내 중소·중견 기업의 미군 납품 규모는 급속히 커질 수 있다. 현재 한국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무기에 직접 쓰이는 배터리 생산에는 소극적이다.
방산용 특수 배터리는 일반 전기차(EV) 배터리와 비교해 시장은 작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스페셜티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자폭형 드론은 무거운 폭탄을 싣고 장거리를 비행한다. 극초음속 유도 미사일은 급격한 방향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기 저항을 견뎌야 한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맞춰야 해 값이 상대적으로 비싸다. 방산용 특수 배터리의 가격은 ㎾h당 500~3000달러에 달한다. 중저가 리튬·인산철(LFP)은 30~60달러, 삼원계(NCM)는 80~120달러에 그친다. ◇ “반도체·에너지 분야도 새 기회 열려”방산용 특수배터리 시장은 빠르게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최근 이란과의 전쟁,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작전 등 실전 과정에서 배터리 성능의 중요성을 절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용 드론은 대량 생산을 위한 사전 작업이 시작됐다. 전쟁부는 올해 5월 드론용 배터리 규격을 특정 원통형으로 통일하는 내용 등을 담은 표준 기준을 발표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군 전체가 사용하는 드론의 배터리 기준이 통일되면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생산 속도가 빨라질 뿐 아니라 수익성도 높아진다”고 했다.
미국 측은 항공우주 분야에서도 한국산 배터리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경재 텍사스대 재료공학과 교수는 “최근 유럽과 중동 지역 등에서 전쟁이 잇따르자 과거와 다른 방산 전략과 무기 체계가 도입되고 있다”며 “배터리뿐 아니라 반도체, 전기차, 에너지 분야 등에서도 새로운 방산 사업 기회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