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7일 ‘단계적·점진적 개헌’ 검토를 내각에 지시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10일 6·3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하는 ‘순차 개헌론’을 띄운 지 1주일 만이다. 이 대통령은 헌법 전문에 5·18 정신과 부마민주항쟁을 함께 담는 방안을 제안했다. 국민의힘이 현시점에서 개헌 논의 자체에 부정적이라 실제 개헌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李 “5·18 정신 수록”
이 대통령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국회의장께서 ‘합의되는 것, 국민이 동의하는 쉬운 의제부터 순차적으로 개헌하자’고 말씀하셨지 않느냐”면서 정부 차원의 단계적 개헌 검토를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진척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며 “정부가 개헌을 주도해서 할 단계는 아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하자”고 했다.
국정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큰 대통령 임기 문제 등 권력 구조 얘기는 빼고 여야 합의가 가능한 부분을 먼저 고치자는 게 단계적 개헌론이다. 이 대통령은 국민적 공감대가 크고, 정치권 합의가 가능한 개헌 사항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지방자치 강화, 비상계엄 요건 강화 등이다.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에 관해서는 “형평성과 균형 얘기를 하는데, 야당에서 부마항쟁도 넣자고 주장했던 기억이 난다”며 “부마항쟁도 헌정사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 한꺼번에 하면 형평성에 맞고 논란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뿐만 아니라 국민의힘도 지난 대선 때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공약했다. 부마항쟁은 국민의힘 당헌에 있고 부산경남(PK) 의원을 중심으로 헌법에 담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도 지난해 부산을 찾아 “부마항쟁도 5·18 정신과 함께 헌법 전문에 수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평소에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野 “민생에 집중해야”개헌은 이재명 정부 1호 국정과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그간 개헌 논의를 전면에 꺼내지 않았다. 국회가 주도해야 할 사안으로 보는 데다 정권 초반 국정 동력이 개헌 논의에 쏠리는 것을 경계했다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회 차원의 논의를 지켜보며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해보자는 취지”라며 “우 의장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개헌을 언급한 이날은 우 의장이 여야에 “국회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해달라”며 제시한 시한이기도 하다. 6·3 지선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하려면 늦어도 다음달 7일까지는 개헌안이 발의돼야 하기 때문이다. 개헌안은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 또는 대통령 제안으로 발의된다. 발의된 개헌안은 공고 기간(20일)을 거쳐 60일 이내에 본회의에서 의결해야 한다. 국민투표는 국회 의결 30일 이내에 이뤄져야 한다. 이런 물리적 절차를 역산하면 개헌안 발의 시한이 다음달 7일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여야 분위기는 갈린다. 여당은 개헌특위 구성에 협조한다는 입장이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단계적 개헌 개념인 ‘원포인트 개헌’을 목표로 제시했다. 다만 “개헌이 지선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재선 의원)는 반응도 있다.
국민의힘은 부정적이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군사작전 하듯 날짜를 정해놓고 개헌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민생을 위해 좀 더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개헌이라는 큰 과제가 떨어지면 모든 논의가 ‘개헌 블랙홀’로 빠져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한재영/강현우/최해련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