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하면 욕만 먹는다"…억만장자들 몰린 '의외의 선택지'

입력 2026-03-16 17:40
수정 2026-03-17 00:23
억만장자들에게 기부는 한물 간 유행이 된 것일까. 2020년대 들어 미국 억만장자들의 기부가 빠르게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세계적 초고액 자산가 기부클럽인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를 탈퇴하는 초부유층이 늘고 있다.

이 캠페인은 세계적 투자자 워런 버핏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부부와 함께 2010년 시작한 자선 서약 캠페인이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의 전 부인인 매켄지 스콧 등 250여 개인 및 단체가 동참하며 이름을 알렸다. 한때 더기빙플레지는 유명 인사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과시하는 동시에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인도주의적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더기빙플레지 서명자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서명자가 43명에 그쳤다. 더기빙플레지가 출범한 2010년부터 5년간 113명이 이름을 올린 것과 비교하면 감소세가 가파르다.

억만장자들의 기부 감소와 관련해 NYT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 우호적인 성향의 정보기술(IT)업계 창업자들을 중심으로 더기빙플레지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고 전했다. 자신이 영위하는 사업활동 자체가 자선이라고 주장하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대표적이다. 진정한 의미의 사회 환원은 기부가 아니라 사업적 성공을 통해 미국 경제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새로 억만장자가 된 기업가 사이에서 확산하고 있다.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시대정신이 빠르게 변해 기부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도 이유다. 비영리 부문 자문사 비릿지스팬의 톰 티어니는 “요즘은 거액을 기부해도 칭찬보다 비판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초고액 자산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커진 점을 이 같은 현상의 배경으로 꼽았다. 아무리 많은 돈을 기부하더라도 대중은 그 같은 부를 쌓아올릴 수 있었던 과정에 의혹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아론 호바스는 더기빙플레지를 2010년대를 보여주는 ‘타임캡슐’에 비유했다. 그는 “억만장자들은 더 이상 자선활동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자선보다 정치자금 기부를 선택하는 이도 늘고 있다. NYT는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이들은 기부 대신 선거에 많은 돈을 쓴다”고 짚었다.

한명현 기자 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