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스위스 승강기 기업 쉰들러가 제기한 3250억 원 규모의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전부 승소한 가운데, 법무부는 "현재로선 쉰들러가 판정 취소소송을 제기할 만한 사유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이번 판정을 사실상 '완승'으로 평가했다.
양준열 법무부 국제투자분쟁과 검사는 16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쉰들러 ISDS 승소 관련 브리핑에서 취소소송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판정문이 당사자 주장과 판단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취소 사유가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한국 소송비용도 돌려받은 '완승' 평가앞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지난 14일(한국시간) 쉰들러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를 전부 기각했다. 이 판정으로 정부는 약 3250억 원 규모의 배상 청구를 모두 방어했을 뿐 아니라 약 96억 원의 소송비용도 쉰들러 측으로부터 돌려받게 됐다.
이번 분쟁은 쉰들러가 2018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중재 사건이다.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HE)의 2대 주주였던 시기인 2013~2016년 유상증자와 콜옵션 양도 과정에서 한국 규제당국이 충분한 조사와 감독을 하지 않아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쉰들러 측은 특히 금융감독원 등 규제당국이 현대그룹 경영권을 비호하면서 외국 투자자인 자신들을 차별적으로 대우했다고 주장하며 투자협정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당초 배상 청구액은 약 4900억 원이었지만 중재 과정에서 약 3250억원으로 조정됐다.
그러나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판정부는 한국 규제당국의 조치가 자의적이거나 차별적인 행위로 볼 근거가 없으며, 현대그룹을 부당하게 비호했다는 주장 역시 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국가 규제권' 재확인 받아…범부처 협력 결실정부는 이번 판정의 핵심 의미로 '국가의 정당한 규제권' 원칙이 국제적으로 확인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중재판정부가 규제 당국의 판단을 사후적으로 재평가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점이 판정의 전제가 됐다.
특히 쉰들러 측은 한국 정부가 현대그룹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규제 권한을 남용했다는 이른바 '정경유착 프레임'을 제기했지만, 중재판정부는 이에 대한 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정은 한국 정부가 ISDS 사건에서 중재판정부 본안 심리 단계에서 전부 승소한 두 번째 사례다.
또한 정부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사건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승소(2024년)와 엘리엇 매니지먼트 사건 취소소송 승소(2025년)에 이어 국제투자분쟁 대응에서 잇따라 성과를 거두게 됐다.
법무부는 이러한 성과의 배경으로 장기간 축적된 대응 경험과 범부처 협력 체계를 꼽았다. 조아라 법무부 국제투자분쟁과장은 브리핑에서 "론스타 사건을 시작으로 10여 년 동안 ISDS 사건을 대응해 오면서 관계부처의 전문적 지원과 협력이 축적됐다"며 "법무부 국제투자분쟁과를 중심으로 여러 부처가 협력해 중재판정부를 설득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취소소송 가능성 있지만…'법률 제정' 대응다만 쉰들러가 향후 판정 취소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ISDS 중재판정은 항소가 허용되는 일반 재판과 달리 취소 사유가 제한적이며, 중재지 법원에서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있을 때만 취소가 가능하다. 법무부는 쉰들러 측이 취소소송을 제기할 경우에도 대응 준비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최근 ISDS 사건이 늘어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제도 정비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국제투자분쟁 대응 체계는 대통령 훈령에 근거해 운영되고 있는데, 이를 법률로 격상해 국가 차원의 대응 기반을 강화하는 방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조 과장은 "법률이 제정되면 행정부 차원을 넘어 국가 차원의 전문 인력과 연구 인프라를 구축해 투자분쟁 대응 역량을 체계적으로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진 기자 magiclam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