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삼청동의 한 갤러리를 찾았다. 김영준의 작품을 보고 싶어서. 그는 한국의 나전 공예를 파인아트 영역으로 끌어올인 대표적 작가다. 'K아트 어라운드 페스타'라는 타이틀로 한국 전통 예술의 세계화에 공감하는 12명의 작가 작품이 전시된 갤러리 1층, 가장 좋은 자리에 그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멀리서 보면 원형 방패처럼 놓인 모습. 원은 동서를 막론하고 ‘신의 섭리’에 다가갈 수 있을 만큼 가장 완벽에 가까운 도형이다. 작품 앞으로 처음 두어 발 다가가자 원형 작품의 심상치 않은 반짝임이 보석처럼 눈길을 사로잡았다. 좀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 빛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천 조각의 자개를 촘촘히 붙여 만들어낸 동심원의 집적, 반복의 완성이었다. 각 조각은 독립적으로 빛을 반사하고, 각도에 따라 색을 바꾸며 전체 원형 패턴 안에서 미세한 빛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완전한 원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보면 수많은 조각이 하나하나 배치돼 만들어낸 나전의 물결, 마치 수많은 인간 군상의 제각각 사연 많은 인생이 쌓여 만들어진 세상을 보는 듯했다.
‘코스모스’. 아니나 다를까 작품명에는 ‘우주’를 의미하는 코스모스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그럴 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다소 구상적이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한 채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무언가 내 눈에 걸렸다. 그것은 작품 한가운데 위치한 작은 구체-진주! 어? 수많은 조각으로 구성된 코스모스의 중심에 자리 잡은 저 이질적인 오브제는…. 거대 우주가 생성된 ‘사건의 시작점’인가 아니면 길고도 고단했던 움직임의 귀결점인가! 시작이라면 모든 이가 원초적으로 그리워할 어머니의 왼쪽 유두처럼 성스러운 모성의 상징일 것인가, 끝이라면 고통 속에 여문 진주처럼 아름다운 성취일까? 고민의 고민을 하다가 이마를 탁 쳤다. “아…. 내가 가소로운 인간의 눈으로 거대한 우주를 재려는 가당찮음을 시전하고 있었구나!”
저 거대하고 무심하며 영원과 동격인 우주에 무엇이 시작이고 무엇이 끝임이 무슨 의미일 것인가. 시작인 듯하면서 끝이기도 하고 다시 새로운 시작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수없는 ‘관계’ 속에서 점은 우주가 되었다가 다시 점이 되기도 하는 것일진대. 그렇다면 눈을 부릅뜨고 째려봐야 발견할 수 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저 진주는 무엇이란 말인가? 사유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중심 구체와 주변 동심원, 반복되는 자개의 집적은 생성과 성취, 기원과 결과를 동시에 담는 중첩 구조다. 중앙의 구체는 씨앗이 될 수도, 이미 응축된 결실일 수도 있다. 동심원은 원인과 결과를 고정하지 않는다. 중심이 시작이자 끝일 수 있으며 보는 사람의 시선과 해석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거대한 우주의 흐름에서 보면 인간의 ‘성취’란 제아무리 큰 야망으로 빚어도 닿을 길 없는 하찮음이다. 이런 거대 담론으로 빠져들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지점에는 허무밖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을 수도 있겠으나 어떤 이는 그 한가운데 작은 진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단 하나의 존재라도 의미를 알아봐 준다면, 우리는 위대해지는 것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다시 말해 거대 우주 속에서 위대해지고자 하는 욕망이 무의미에 수렴하는 하찮음이라는 진실과 0.000001의 확률이라도 0이 아님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희망’은 공존 상태라는, 작가가 표현하는 ‘중첩성’이 모두 ‘가능성’과 ‘확률’의 상태로 존재하다가 ‘관찰자’가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에야 의미를 갖는 양자역학적 관계론을 표현한다.
작가의 존재를 지우고 우주와 자연의 섭리를 우선하며 그 비움이 만남이라는 우연과 결부될 때 비로소 메시지가 되고 우주적 깨달음으로 통한다는 점에서 김영준의 ‘코스모스’는 한국 예술의 전통과 통한다. 그는 가능성 자체를 구현했지만, 그 가능성의 완성은 관찰자의 몫이다. 중심의 작은 구체와 주변 동심원, 반복되는 자개 조각이 침묵 속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위대함은 이미 이루어진 성취가 아니라 그 가능성을 견디고 쌓아 올리는 과정”이라는 메시지이며 그것은 구도자(관찰자·관람객)를 만나 깨달음으로 승화될 때 완성된다는 것이다.
김영준의 작업은 늘 진득한 질문을 던진다. 언론은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김영준의 작품을 특별 주문했다는 에피소드를 다루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일이 김영준 작가에게 ‘몹쓸 짓’이라고 생각한다. 두 셀러브리티와 얽힌 소소한 에피소드가 김영준 작품을 둘러싼 거대한 사유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떼어내 놓고 나면 초라한 파편에 지나지 않을 자개 조각이 구성하는 우주의 형상과 그 초라함의 모둠으로 극치의 화려함을 소환하는 기적. 그리고 그 시작일지 끝일지 모를 원형의 오브제가 당신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무엇일까? 화려한 장식으로 읽어도 좋다. 우주적 질서의 은유로 읽어도 좋다. 혹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갤러리를 나서 항아리 수제비 한 그릇 하고 돌아서면 될 일이다. 김영준 작가의 우주는 다음달 말까지 삼청동 갤러리1에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