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이 문화 후원하는 이유…"예술이 좋고, 가성비는 더 좋고"

입력 2026-03-23 09:33
수정 2026-03-23 09:36


미술관 전시장이나 공연장 입구에는 대개 후원사들의 로고와 기업명이 함께 적혀 있다. 대기업들의 이름도 있지만 중소·중견 기업 비중이 만만찮다. 업종도 증권사, 제약회사 등 미술과 관계 없는 업종들이 많다. 해당 기업들은 미술관을 장기 후원하거나 공연장까지 직접 짓기도 한다. 사회공헌 예산이 비교적 풍족한 대기업이 아닌 중소·중견 기업이, 왜 문화예술 분야 후원에 이렇게까지 영혼을 쏟는 걸까.

문화예술 후원 늘리는 기업들

17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한국메세나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총액은 2024년 기준 2125억원으로 코로나19 기간(2020~2021년)을 제외하면 매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액수 기준으로는 아직 대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중소·중견기업의 후원액도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게 협회 얘기다.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신영증권이다. 신영증권은 여의도 사옥 안에 클래식 전용 공연장 ‘신영체임버홀’을 지어 공연을 올리고 있다. 신영문화재단을 통해 미술상과 건축문화상을 시상하고 있고, 2011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를 후원하면서 창작 공모전, 국제콩쿠르 참가 장학사업을 운영 중이다. 2021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과 후원 협약도 맺었다.

예술상이나 대회 등 관련 후원 프로그램을 기획해 꾸준히 시행 중인 기업들도 많다. 제약업계가 특히 문화예술분야 사회공헌에 적극적이다. 종근당은 2012년부터 매년 젊은 작가를 뽑아 창작금을 지원하는 ‘종근당 예술지상’을 운영 중이다.



안국약품은 안국문화재단을 통해 2009년부터 비영리 전시공간 'AG갤러리'를 운영하며 매년 신진작가를 선발해 개인전 기회와 작가지원금을 제공한다. 동아쏘시오그룹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여성 백일장인 ‘마로니에 백일장’을 1983년부터 운영 중이다.

자체 공연을 만들어 각 장르를 후원하는 기업들도 있다. 현대약품은 클래식 공연 시리즈 '아트엠콘서트'를 2009년부터 17년째 꾸준히 열고 있다. 크라운해태홀딩스는 국내 최대 규모의 민간 전통음악 공연인 '창신제'를 통해 국악 전통예술인을 후원하고 있다. 가장 대중적인 건 학교·미술관·행사 등 후원이다. 제일메디칼코퍼레이션은 한예종 전통예술원에 장학금과 창작지원금을 지원한다. 한신공영은 환기미술관을, 벽산엔지니어링은 평창대관령음악제를 각각 후원 중이다.

“의외로 ‘가성비’ 높다”

중소·중견기업들이 문화예술에 돈을 쓰는 이유는 뭘까. 후원 기업 관계자들은 “생각보다 후원 ‘가성비’(가격대 성능비)가 높다”고 입을 모은다. 예술상의 경우 적게는 수천만원 수준으로도 운영이 가능하지만, 예술계 안에서 확실한 인지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반 대중에 대한 홍보 효과도 비용에 비해 높은 편이다. 한 증권사 마케팅 담당자는 “문화예술 소비자는 후원사 로고를 눈여겨보는 성향이 있어 잠재 고객들에게 더 효율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며 “거액을 써가며 TV광고를 제작하거나 글로벌 대기업들과 함께 스포츠 대회 후원을 하는 것보다 비용 대비 효과가 훨씬 높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는 오너의 관심사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국악과 조각에 관심이 많은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이 대표적이다. 1998년 크라운제과 부도 당시 북한산에 올랐다가 우연히 대금 연주를 듣고 국악에 관심을 가진 뒤 20년 넘게 1000억원 이상의 금액을 국악 발전에 후원했다. 개인의 취향이 기업 사회공헌으로 연결된 것이다.

문화예술 후원을 통해 확보한 콘텐츠는 VIP 고객 관리 수단이 되기도 한다. 자사가 주최하는 공연이나 전시에 고객을 부르는 식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시대에 문화예술 후원 활동이 사회(S) 항목을 채우는 수단이 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