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나비약’ 등으로 불리는 경구용 식욕억제제를 복용한 사람 가운데 절반 이상이 비만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 상태에서 약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의약품 남용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정책과제 보고서’에는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 연구진은 2022∼2025년 경구용 식욕억제제를 복용한 경험이 있는 만 19∼64세 성인 257명을 대상으로 다이어트약 사용 경험에 대해 조사했다.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4.1%는 처음 복용 당시 체질량지수(BMI)가 비만에 해당하지 않는 25 미만이었다. 반면 BMI 30 이상인 고도비만 상태에서 약을 복용했다는 응답은 12.5%에 불과했다.
복용 이유를 묻는 질문에서는 ‘비만을 진단받지 않았으나 체중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응답이 59.5%로 가장 많았다. 이어 ‘비만을 의사에게 진단받고 치료하기 위해서’가 34.6%, ‘주위의 권유로’ 8.9%, ‘고혈압·당뇨병 등을 의사에게 진단받고 치료하기 위해’ 8.6%, ‘호기심으로’ 3.9% 순이었다. 해당 문항은 중복응답으로 조사됐다.
복용 기간도 짧지 않았다. 경구용 식욕억제제 복용 기간은 3개월 이하 복용이 45.9%, 3개월 초과∼1년 이하가 37.0%, 1년 초과가 17.1%였다.
이 같은 사용 행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욕억제제 안전사용 가이드와 펜터민 허가사항에서 제시한 원칙과는 거리가 있다. 식약처는 경구용 식욕억제제를 BMI 30 이상 환자, 또는 고혈압·당뇨병 등 위험인자를 동반한 BMI 27 이상 환자에게 단기간 보조요법으로 사용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무리한 복용은 부작용으로도 이어졌다. 응답자의 73.5%는 경구용 식욕억제제 복용으로 부작용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세부적으로는 입마름이 72.0%로 가장 많았고, 두근거림 68.8%, 불면증 66.7%, 어지럼 38.6%, 우울증 25.4%, 성격 변화 23.8%, 불안 22.8% 등이 뒤를 이었다. 자살충동을 경험했다고 답한 응답자도 3명(1.6%) 있었다.
체중이 다시 늘어나는 이른바 ‘요요’도 흔했다. 응답자의 53.4%는 약 복용 중단 후 체중이 다시 증가하는 요요현상을 겪었다고 답했다.
부작용을 겪고도 일정 기간 중단 후 다시 복용한 비율이 54.0%였다. 22.8%는 부작용을 겪고도 복용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 복용했다. 부작용으로 약 복용을 중단한 비율은 23.3%였다.
보고서는 이 같은 의약품 오남용 실태의 배경으로 다이어트를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외모를 중시하는 문화, 의료서비스 공급 경쟁, 다양한 대중매체의 발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의약품 남용 예방·관리를 강화하고 의사와 약사, 간호사 등 의료진이 의약품 남용에 대해 중재하는 기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다이어트약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해 처방시 정신과적 부작용 가능성을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증상을 관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민형 기자 mean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