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세기 진시황은 황하 이남의 흉노족을 북쪽으로 몰아낸 뒤 만리장성을 쌓았다. 이후 계속된 흉노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한나라 무제는 외교관 장건을 서역에 파견해 군사 동맹을 시도했다.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고 13년 만에 돌아온 장건의 보고로 동서 교류의 가능성을 보게 되고 실크로드 개척을 시작했다. 위기 극복 과정에서 ‘새로운 길’을 찾은 것이다.
시진핑이 국가주석으로 취임하기 직전인 2012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당시로선 낮은 수준인 8% 밑으로 떨어지고 수년 내 중진국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2013년 하반기 시 주석은 중앙아시아, 동남아를 순방하며 ‘개방과 포용, 상호연결, 공동발전’을 목표로 하는 ‘일대일로’ 구상을 제안한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선제적 조치를 통해 고비를 넘으려고 한 것이다. 현재 중국 경제는 연 5% 내외의 중저속 성장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대외 교역환경 변화에도 직면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북극항로라는 ‘새로운 길’의 개척에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은 꽤 오랜 시간 북극항로 개척을 준비해 왔다. ‘빙상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2017년에 처음 제시됐고 2018년 발표한 ‘중국 북극 정책’ 보고서에는 “관련 국가와 빙상 실크로드를 함께 만들고 싶다”는 대외 협력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국제협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9년에 러시아와 함께 ‘극지 기술 및 장비 공동 실험실’을 설치해 극지 관련 핵심기술을 공동 개발 중이다.
특히 2024년부터는 러시아와 ‘중·러 북극항로 협력 분과위원회’를 구성하고 매년 협의회를 진행하고 있다. 작년 10월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2차 협의회에는 중국 교통운수부 장관과 러시아 국가원자력공사 대표가 참석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작년에는 ‘중국·유럽 북극 컨테이너 익스프레스 항로’를 개통했다. 4000TEU(20피트 컨테이너 1개) 규모 컨테이너 화물선 ‘이스탄불 브릿지’는 저장성 닝보항을 출발해 20일 만에 영국 최대 컨테이너 항구인 펠릭스토우항에 도착했다. 기존 수에즈운하 항로에 비해 운송기간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화물선 ‘이스탄불 브릿지’의 쭝더셩 선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번 항해가 북극이 따뜻한 계절에 맞춰 이뤄졌고, 이 덕분에 수로가 넓어 쇄빙 비용을 크게 절감했다”고 말했다. 이는 북극항로가 특정 시기에 특히 경제성이 높음을 함의하며, 우리 정부가 올해 9월을 북극항로 시범 운항 목표 시기로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북극항로의 경제적 효과는 매우 크다는 평가다. 항로 단축으로 수출입 물류 운송비가 절감된다. 작년 국내 연구기관 분석에 따르면 부산~로테르담 기준으로 수에즈운하 항로에 비해 이동거리가 35% 단축되고 운송비는 28% 감소한다. 또한 산업 측면에서는 친환경 선박 및 쇄빙 기술 등 후방 산업에 미칠 파급 효과도 커 우리 조선산업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다.
중소기업의 수출 애로사항을 조사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물류’다. 이번 중동 상황 전개에서 보듯이 선복 확보, 선적 비용 등은 국제정세, 유가변동 등 예측이 어려운 요인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수출기업에 낮은 비용의, 안정적인 선복 확보는 매우 중요하다.
중국과 입장은 다르지만 북극항로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길이다. 우리도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극지 항행 기술을 발전시켜 북극항로를 운항한다면 수출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작년 수출이 역대 최대를 기록했지만, 급변하는 통상환경 변화 속에서 우리 중소기업의 수출 환경은 언제든 불확실성에 노출될 수 있다.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방안으로 ‘얼음 위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면 우리 기업이 더 낮은 비용으로 안정적으로 수출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