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석유업계 경영진이 트럼프 행정부에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가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변동성이 더욱 커지고 유가 상승 압력도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1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엑슨모빌, 셰브론, 코노코필립스 등 미국 주요 석유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최근 백악관에서 열린 회의와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 더그 버검 내무부 장관과의 논의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에너지 수송 차질이 글로벌 시장에 지속적인 충격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엑슨모빌의 대런 우즈 CEO는 정부 관계자들과의 대화에서 투기 자금이 유가 상승에 가세할 경우 현재 수준보다 더 높은 가격 상승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원유뿐 아니라 휘발유와 디젤 등 정제 연료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셰브론의 마이크 워스 CEO와 코노코필립스의 라이언 랜스 CEO 역시 에너지 공급 차질 규모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백악관은 유가 안정을 위해 여러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제재를 추가 완화하는 방안과 함께 대규모 전략 비축유 방출을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 항만 간 원유 운송을 제한하는 법률을 일시적으로 면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 베네수엘라와 미국 간 원유 교역 확대를 통해 공급을 늘리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버검 장관은 행정부가 글로벌 에너지 시장 안정을 위해 에너지 기업들과 “24시간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에너지부 역시 공급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한 추가 조치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다만 석유업계에서는 현재 논의되는 정책만으로는 위기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결국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개방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에너지 수송로다. 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고유가가 세계 경제 성장에 부담을 주고 연료 수요를 위축시킬 가능성도 있다.
텍사스 미들랜드에 본사를 둔 석유기업 엘리베이션 리소시스의 스티븐 프루엣 CEO는 “세계 경제는 배럴당 120달러 유가를 감당할 필요가 없다”며 “이 수준의 유가는 결국 경제를 훼손할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부 고위 관계자 역시 유가 상승이 계속될 가능성을 인정했다. 다만 국방부가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개방할 군사적 옵션을 검토하고 있으며 행정부는 이를 수개월이 아니라 수주 내 실행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이란의 선박 공격은 해협 인근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미국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 제재 완화와 함께 4억 배럴 규모의 비축유 방출을 발표했지만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셰브론의 워스 CEO는 최근 인터뷰에서 “중동에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는 상황은 에너지 업계가 항상 가정하는 최악의 위기 시나리오”라며 “현재 시장은 매우 불안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일부 석유업계 경영진은 고유가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석유기업의 수익이 늘어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업과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 게시글에서 에너지 가격 상승 우려를 축소했다. 그는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이기 때문에 유가가 오르면 미국은 더 많은 돈을 벌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 내 생산 확대만으로는 현재의 공급 충격을 상쇄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많다. 업계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하루 약 900만~1000만 배럴 규모 원유 공급이 막혀 있는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버검 장관은 미국 기업들이 유가 상승에 대응해 증산을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증산 규모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최근 미국 정부는 엑슨모빌과 코노코필립스 등 기업들과 베네수엘라 유전 투자 재개 가능성도 논의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노후 유전을 복구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 규모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엑슨모빌은 이달 말 베네수엘라에 기술팀 파견을 검토하고 있으며, 베네수엘라에서 활동 중인 미국 기업 셰브론은 현지 원유 생산이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으며 추가 증산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엑슨모빌과 코노코필립스는 2007년 당시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가 자산을 국유화하면서 현지 사업에서 철수했다. 두 회사는 현재도 수십억 달러 규모의 미지급 자산 보상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