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란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는 수출 중소기업에 대출해준 은행에 면책 원칙을 적용하기로 했다. 국민성장펀드 사례처럼 금융회사가 투자나 대출로 손실을 봐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의미다.
15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13일 금융정책국장 주재로 관계기관과 시장안정프로그램 확대 회의를 열고 최근 자금시장 동향과 대응 방안 등을 점검했다. 이 자리에서 금융회사들은 중동 지역에 수출하는 국내 중소·중견기업이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해당 기업 대출 등에 대해 면책을 요청했고 금융위가 이를 수락했다.
정부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여파가 실물경제로 전이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전체 매출에서 중동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기업을 중점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비율은 3% 안팎에 그치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면 중동 의존도가 높은 중소·중견기업이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융당국은 산업은행,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등이 정책 대출 형태로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하는 20조3000억원 규모의 긴급 금융을 가동할 방침이다. 산업은행이 8조원, 기업은행이 2조3000억원, 신용보증기금이 3조원을 출자해 중소·중견기업에 신규 자금을 지원하고 금리를 감면해 준다. 한국수출입은행도 이번 전쟁으로 피해를 본 중소·중견기업에 최고 2.2%포인트 우대 금리를 적용하고, 7조원대 금융 지원을 제공한다.
금융위는 채권 시장이 흔들릴 것에 대비해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운용 규모를 최대 20조원에서 추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채안펀드는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인 2008년 회사채 매입 등을 위해 처음 도입한 제도다.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권이 공동 출자해 회사채, 기업어음(CP) 등을 매입함으로써 자금 경색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2020년 최대 20조원 규모로 증액했다. 현재는 83개 금융사가 출자 약정을 맺고 필요할 때 자금을 투입하는 ‘캐피털 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주축인 10조원 규모의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도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채안펀드와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 등을 포함한 시장안정 대책 규모가 100조원에서 대폭 늘어날 수 있다.
금융위는 전쟁 장기화 등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국제 유가 급등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면서 국고채를 중심으로 채권 금리가 상승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시장에서 채권 물량이 잘 소화돼 채안펀드 규모를 급하게 늘릴 필요는 없다”며 “중동 수출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이 어떤 상황에서든 어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선제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