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 후발주자인 에쓰오일이 지난달 처음으로 전국 주유소 브랜드 점유율 2위에 오른 것으로 확인됐다. SK에너지, HD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 등에 밀려 ‘업계 막내’ 취급을 받던 판세를 뒤집었다. 정부의 알뜰주유소 도입 이후 극심한 가격 경쟁으로 마진율이 낮아진 경쟁사들이 주유소를 줄이는 동안 최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의 지원 사격에 힘입어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인 결과다.
15일 한국석유관리원에 따르면 에쓰오일의 전국 주유소 등록 업체는 지난달 기준 2270개로 국내 전체 주유소(1만646개) 중 21.3%를 차지했다. SK에너지가 2645개(24.8%)로 부동의 1위를 유지하는 가운데 HD현대오일뱅크(2270개)와 공동 2위로 올라섰다. GS칼텍스는 1997개로 4위에 머물렀다.
국내 정유 4사 중 가장 늦은 2000년 주유소 사업에 진출해 ‘만년 꼴찌’였던 구도를 단숨에 역전한 것이다. 이전까지 SK에너지·GS칼텍스 양강 구도이던 국내 주유소 시장은 2020년 SK네트웍스 주유소 사업을 인수한 HD현대오일뱅크가 2위로 치고 올라오며 한 차례 지각 변동을 겪었다. 이후 에쓰오일이 2022년 GS칼텍스를 제치고 3위로 올라섰고, 지난달 마침내 HD현대오일뱅크를 따라잡았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는 2010년 이후 매년 100~200곳씩 폐업하며 빠르게 감소했다. 업계에선 모빌리티산업이 전기차 위주로 전환되고, 정부 주도의 알뜰주유소가 확대되며 일반 주유소가 줄어든 것으로 평가한다. 2021년 이후 5년간 SK에너지와 HD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에서 문을 닫은 주유소는 총 846개에 이른다.
에쓰오일은 ‘다른 길’을 걸었다. 사우디 국영 에너지·화학 기업인 아람코가 지분 63.41%를 보유한 지배구조 덕분이다. 아람코는 원유 생산 및 수출량 기준 세계 1위다. 에쓰오일이 중동산 원유를 안정적인 장기 계약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에쓰오일의 중동 원유 수입 비중은 94%로 GS칼텍스(70%), SK이노베이션(65%), HD현대오일뱅크(50%)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아람코로서도 사우디에서 생산한 원유를 안정적으로 수출하려면 에쓰오일을 통한 소매 네트워크가 필수다. 아람코는 에쓰오일을 정유·화학 등 글로벌 다운스트림 전략을 실행하는 동북아시아 전초기지로 키우고 있다. 업계에선 에쓰오일이 국내 석유화학 불황에도 약 9조원을 들여 울산에 세계 최대 규모 석유화학 복합 시설인 ‘샤힌 프로젝트’를 건설 중인 것은 이런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에쓰오일은 대리점(직영)은 물론 일반주유소(자영) 사업주에게도 지원을 확대해 국내 유통망을 추가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6월 도입한 인공지능(AI)·빅데이터 기반 주유소 판매 분석 시스템이 대표 사례다. 인근 주유소의 가격과 부가 사업 운영 현황, 고객 유입·유출 흐름을 분석해 사업주에게 적정 소비자 판매가를 제시하는 기능을 갖췄다.
회사 관계자는 “에쓰오일은 그룹사 체제인 경쟁사와 달리 단일 기업 구조로 운영하기 때문에 주유소 영업망이 기업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지역별 주유소가 해당 권역에서 시장 영향력과 직결되는 만큼 영업망 확충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