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7년 만에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건조 재개에 나섰다. 산업 경쟁력 회복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에너지 안보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이 사실상 장악해 온 고부가가치 LNG선 시장에도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14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민간 조선사와 협력해 2019년 이후 중단된 LNG 운반선 건조를 자국 내에서 다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조선업 경쟁력 회복을 위해 약 1조엔(약 9조 4000억원) 규모의 정책 지원도 거론된다.
경제성보다 안보…1973년 오일쇼크 이후 에너지 수송망 ‘자국화’
일본이 LNG 운반선 건조 재개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에너지 안보 문제가 있다.
일본은 석유의 약 97%를 수입에 의존한다. 에너지 공급망의 핵심 축은 해상 수송이다. 선박 확보 능력이 곧 국가 에너지 안전망과 직결된다.
일본이 에너지 수송망 확보에 집착하는 배경에는 1973년 제1차 오일쇼크 경험도 자리한다. 당시 중동발 공급 충격을 겪은 일본은 이후 50년간 에너지 안보를 국가 핵심 정책으로 관리해 왔다.
최근 지정학적 환경도 이런 취약성을 자극하고 있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호르무즈 해협 긴장이 높아지고, 대만해협을 둘러싼 역내 군사적 긴장도 이어지고 있다. 에너지 대부분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일본으로서는 해상 수송로 안정성이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상황이다.
조선 경쟁력만 놓고 보면 일본의 입지는 크게 약화됐다.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신규 선박 수주 시장 점유율은 중국 63%, 한국 21%, 일본 5% 수준이다.
실제로 일본 선사들도 일부 LNG 운반선을 중국 조선소에 발주해 왔다. 중국 후둥중화조선은 카타르 LNG 프로젝트에서 미쓰이OSK라인 발주 LNG선 7척을 수주했고, 닛폰유센과 가와사키기선 등이 참여한 프로젝트에서도 LNG선 일부가 중국 조선소에 발주된 사례가 있다.
특히 중국이 과거 희토류 수출 통제처럼 전략 자원을 무기화할 경우 조선 산업에서도 유사한 공급망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 정부는 이런 구조를 바꾸기 위해 조선업 재건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2035년까지 건조 능력을 약 1800만 총톤(GT) 규모로 확대하고, 조선소 자동화와 스마트 야드 구축을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모스형’ 패착 딛고 ‘올 재팬’ 체제 가동
일본 조선업이 LNG선 시장에서 밀린 배경에는 기술 선택 문제가 있다.
일본은 오랫동안 ‘모스(Moss)형’ LNG 탱크 기술에 의존했다. 반면 한국 조선업은 효율성이 높은 멤브레인 방식으로 전환하며 시장 표준을 장악했다. 기술 전환에 뒤처지며 일본 조선업 경쟁력은 빠르게 약화했다.
일본 조선업계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올 재팬(All Japan)’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와 해운사, 조선소를 하나의 산업 체계로 묶어 수주와 기술 개발을 동시에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일본 최대 조선사인 이마바리조선과 재팬 마린 유나이티드를 중심으로 공동 설계 조직인 니혼십야드가 가동되고 있다. 분산된 설계 역량을 통합해 생산 효율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또 미쓰비시중공업의 LNG선 건조 거점을 활용해 생산 라인을 복원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일본은 LNG 운송 분야에서는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선박 데이터 업체 베셀즈밸류에 따르면 일본은 LNG 운반선 보유 가치 기준 세계 최대 선대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 LNG 운반선 선대 가치는 약 409억 달러 규모로 평가된다.
일본 해운사들의 영향력도 상당하다. 미쓰이OSK라인(MOL), 닛폰유센(NYK), 가와사키기선(K Line) 등 일본 3대 해운사는 글로벌 LNG 운송 시장에서 약 30% 안팎의 운영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일본의 LNG선 건조 재개는 단순한 조선업 부활을 넘어 연료 조달과 해상 운송망을 동시에 관리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단기 영향은 제한적…중장기는 변수
다만 일본 조선업의 LNG선 복귀가 당장 한국 조선업을 흔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7년간 건조 공백으로 숙련 인력 단절과 고령화가 심화했기 때문이다. 조선 현장 기술을 단기간에 복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한국 조선업은 수년 치 수주잔고를 확보한 상태다. 일본 선주들 역시 LNG선 발주에서 한국 조선소를 선택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업계에선 중장기적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일본이 에너지 안보를 명분으로 자국 선사와 조선소 간 협력을 강화하고 정책 지원을 확대할 경우 LNG선 시장 경쟁 구도 역시 변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