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13일(현지시간) 이란의 핵심 원유 수출 거점인 하르그섬을 공습했다. 석유 인프라는 건드리지 않고 군사시설만 골라 파괴했지만, 이란 경제의 심장부를 정조준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압박 카드를 꺼내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르그섬은 길이 8㎞, 너비 4~5㎞의 산호초 섬으로 연간 약 9억5000만 배럴을 처리해 이란 원유 수출량의 약 90%를 담당하는 터미널이자, 전쟁 자금줄 역할을 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섬 주변 바다의 수심이 깊어 초대형 유조선도 접안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췄고, 중국 등 아시아 시장으로 향하는 원유 대부분이 이곳을 통해 수출된다.
페르시아만 주요 해상 유전 3곳에서 원유를 받아 저장하거나 글로벌 시장에 수출할 수 있는 상태로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1960년대 미국 석유회사 아모코가 처음 시설을 지었고,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폭격으로 상당 부분이 파괴됐으나 이란이 재건해 규모를 키웠다.
전문가들은 하르그섬이 이란 정권의 숨통을 쥔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JP모건 보고서는 하르그섬 가동이 중단될 경우 이란 국가 생산량의 절반에 달하는 하루 330만 배럴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군사지리 전문가인 프랜시스 갈가노 빌라노바대 부교수는 CNBC에 "전쟁을 (빠른 시일 내에) 이기는 것이 목표라면 하르그를 파괴하거나 점령해야 할 것"이라며 점령에는 약 5000명의 지상군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워싱턴DC 소재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리처드 골드버그 선임고문도 호르무즈 통제권을 되찾은 뒤에도 이란 정권이 버티고 있다면 하르그섬 수출터미널 무력화 등으로 정권의 생명선을 끊어놓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공습에서 에너지 시설을 피해 군사시설만 표적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행을 계속 방해한다면 에너지 시설까지 공격하겠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이날 트루스소셜을 통해 "내 지시에 따라 미군 중부사령부가 중동 역사상 가장 강력한 폭격 중 하나를 감행해 하르그섬의 모든 군사 목표물을 완전히 파괴했다"고 밝혔다. 다만 석유 인프라는 건드리지 않았다며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롭고 안전한 통과를 방해한다면 이 결정을 즉시 재고할 것"이라고 했다.
그간 이란 전역을 폭격하면서도 하르그섬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던 미국이 이번에 선별적 공습을 감행한 것은 유가 급등세 속에서 이란 정권을 옥죄기 위한 새로운 압박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풀이된다.
이란군은 자국 매체를 통해 자국 석유·에너지 인프라가 타격받을 경우 중동 지역에서 미국과 협력하는 석유 기업들의 에너지 인프라를 공격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미국이 하르그섬을 공습하자 이란이 즉각 반격을 경고하며 '맞불'을 놓은 것. 이란과 가까운 걸프 산유국들의 석유시설은 대체로 국영기업이 운영하지만, 미국 정부·기업과 오랜 전략적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