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이 전북 군산조선소를 HJ중공업(옛 한진중공업) 최대주주인 에코프라임마린퍼시픽에 매각한다. 매각 예상 금액은 7000억~1조원 수준으로, 군산조선소는 2010년 완공 후 16년 만에 새 주인을 찾게 됐다. 조선업 슈퍼사이클(초호황기)로 독(dock·선박건조장) 부족 현상이 이어지자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등을 제조할 수 있는 군산조선소의 몸값이 높아져 매각이 성사됐다는 분석이다.
HD현대그룹은 HD현대중공업이 소유한 군산조선소를 에코프라임마린퍼시픽에 매각하기 위한 합의각서(MOA)를 체결했다고 13일 발표했다. 에코프라임마린퍼시픽은 각각 38.6%의 지분을 보유한 동부건설과 한국토지신탁이 HJ중공업을 인수하기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이다.
양측은 실사 후 매각 금액과 거래 조건을 결정할 예정이다. 업계에선 군산조선소의 장부가액이 2021년 말 기준 665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매각금액은 7000억~1조원 수준에서 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군산조선소는 2017년 조선업 침체로 가동을 중단했다가 2022년 10월부터 재가동해 연간 10만t의 블록을 생산하고 있다. 에코프라임마린퍼시픽은 군산조선소를 VLCC 등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와 미 해군 유지·보수·정비(MRO) 거점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블록 만들던 군산조선소, 9년 만에 선박 건조기지로 부활
HD현대, 매각대금 '마스가' 투입…스마트 조선소로 中과 가격 경쟁2008년 첫 삽을 뜬 HD현대중공업(옛 현대중공업) 전북 군산조선소는 한국 조선업 ‘1차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의 상징이었다. 현대중공업은 700m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 독(dock·선박건조장)과 1650t급 골리앗 크레인 등 1조2000억원을 투자한 최신식 조선소를 지었고, 2010년 문을 연 뒤 곧바로 연 1조원 안팎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중국 조선사들이 군산조선소의 핵심 선종인 벌크선과 컨테이너선 저가 수주에 나선 데다 글로벌 선박 발주가 줄어 고사 위기에 내몰렸다. 가동률 0%를 이어가다가 2017년 문을 닫았다.
HD현대의 ‘아픈 손가락’이던 군산조선소 부활은 2021년 시작된 조선업 2차 호황을 타고 시작됐다. 코로나19에 따른 운임 상승과 함께 선박 수주가 늘었고, 1~2년 전부터 한국을 중심으로 독 부족 현상이 이어져서다.
◇ 독 부족에 인수 후보 나타나HJ중공업을 보유한 에코프라임마린퍼시픽이 군산조선소 인수를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HJ중공업은 부산 영도에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다. 2개의 독을 갖췄지만 가장 큰 독의 길이가 300m에 불과하다. 이 독에선 1만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 규모의 컨테이너선밖에 건조할 수 없다. 그렇다고 독을 늘릴 여건도 안 된다. 영도조선소 부지는 26만㎡로 180만㎡인 군산조선소의 7분의 1 수준이다. 땅에서 건조할 수 있는 경비함, 공기부양정 등 중소형 특수선 건조에 열을 올린 이유도 독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에코프라임마린퍼시픽이 군산조선소 인수에 성공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 등으로 몸값이 치솟고 있는 30만t급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을 비롯해 2만TEU 이상 컨테이너선,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가 가능해진다. 한국 조선 3사(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의 독이 꽉 찬 상황에서 군산조선소가 대형 선박 ‘낙수효과’를 볼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HD현대중공업에서 안정적인 일감도 확보할 수 있다. HD현대중공업은 군산조선소 활성화를 위해 인수 후 3년 동안 HD현대의 블록 제작 물량을 발주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설계 용역을 제공하고 원자재 구매대행, 자동화 등 기술을 지원할 계획이다. 군산조선소를 미 해군의 유지·보수·정비(MRO) 조선소로 활용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HJ중공업은 국내 중형 조선소 중 유일하게 미 해군 군수지원함 MRO 사업을 하고 있다.
고용도 확 늘어난다. 군산조선소는 2022년 재가동 후 블록 생산에 주력하고 있어 고용 인원이 현재 1000명에 그친다. 이 조선소가 정상 가동된 2016년 고용 인원이 5250명에 달한 점을 고려하면 고용이 확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 HD현대, 美 마스가 투자 늘릴 듯HD현대는 7000억~1조원 안팎으로 추정되는 매각 자금을 미국 조선소 투자와 조선소 자동화 등에 투입할 예정이다. HD현대는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사업의 일환으로 미국 방위산업 기업 헌팅턴잉걸스인더스트리와 미국 조선소 인수, 조선 인프라 공동 투자 등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 정부 물량을 현지에서 생산할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미국계 사모펀드(PEF) 서버러스캐피털과는 50억달러 규모 투자 펀드를 조성하고 있다. 정기선 HD현대그룹 회장은 작년 11월 “미국 조선소 인수와 업그레이드, 첨단 선박 개발 및 건조, 조선 기자재 공급망 확충 등의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울산 등 국내 조선소 추가 투자도 단행한다. 중국과의 원가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스마트 조선소에 투자해 슈퍼사이클 이후 더 치열해질 가격 경쟁에 대비한다는 전략이다. 최광식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HD현대와 HJ중공업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거래”라며 “군산조선소가 신조선 건조에 나서면서 생산 효율성이 확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섭/김진원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