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으로 유가가 치솟자 우리 정부는 정유사와 주유소에 기름값을 과도하게 올리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떠오르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의 한 대목이 있다. 해당 부분은 잉여 곡물을 수출할 때 장려금을 지급하던 당시 영국 곡물법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나온다. 곡물 공급이 넘치면 가격이 내려가면 될 일이다. 그러나 정부는 곡물 수출 장려금을 통해 인위적으로 가격을 유지해 곡물 생산자들의 이익을 보전해줬다. 이 같은 법을 통과시킨 의회 구성원 대부분이 대규모 농업용 토지 임대인이었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이런 법안은 폐기돼야 마땅하다고 믿었다. 나아가 그는 ‘곡물 시장과 곡물법에 대한 여담’이라는 장에서 곡물상에 대한 편견을 다뤘다. 여러 쪽에 걸쳐 전개된 스미스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곡물상은 매점매석을 통해 자기 잇속만 챙기는 자로 비난받곤 한다. 그러나 곡물상과 소비자의 이해관계는 서로 다르지 않다. 곡물상은 수확 상황과 계절 요인을 반영해 곡물 가격을 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올리면 수요가 위축된다. 그러면 창고에 남아도는 곡물을 보관하는 비용을 떠안게 된다. 새로 수확한 곡물을 판매할 때가 임박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가격이 과하게 책정돼 안 팔린 묵은 곡물을 시장 가격보다 더 저렴하게 처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곡물상이 너무 가격을 낮게 책정하면 과도한 수요를 유도한다. 그러면 공급 물량이 조기에 소진되는 결과를 낳는다. 곡물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으면 기근의 위험까지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곡물상은 매일, 매주, 매달 그때마다 시장 상황에 가장 적합한 수준의 가격으로 곡물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 주의를 집중한다. 이익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은 가격으로 곡물을 파는 그는 공공의 이익을 특별히 고려하지 않는다. 순전히 자신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할 따름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곡물 시장 수요자에게 적절하고 충분한 물량이 제공된다. 하지만 흉년이 들거나 전쟁으로 곡물 수입이 막혀 곡물 가격이 급등하면 사람들은 곡물상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공급 자체가 줄어 가격이 올랐다면, 그 가격에 맞춰 소비를 조절해야 할 현실에서도 대중은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기보다는 곡물상을 공격하는 데 가담한다.
스미스가 보기에 이 같은 곡물상에 대한 분노는 17세기 마녀사냥과 비슷한 점이 있다. 스미스의 조국인 스코틀랜드에서는 무고한 이웃들을 마녀로 몰아 기소하기만 하면 불합리한 재판을 거쳐 화형에 처하게 했다. 마녀 판별 방식이 법으로 정해져 있어 한 번 걸려들면 살아남기 힘들었다. 마녀사냥의 백미는 사람을 불태워 죽이는 장면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곡물상은 마녀로 몰린 여인들에 비하면 덜 억울할 수는 있겠지만, 대중 심리의 희생자가 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고 스미스는 지적했다.
물론 스미스의 시대와 지금 우리의 상황을 똑같은 잣대로 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공급과 수요를 스스로 조정하는 시장경제에 의존한다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공급자를 악마화하는 것은 심리적인 만족감 외에 실질적 이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