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수 "신기술 '죽음의 계곡' 넘도록 공공팹이 도와야"

입력 2026-03-13 17:16
수정 2026-03-14 00:25
지난달 찾은 대전 유성구 KAIST 캠퍼스 내 나노종합기술원 팹 2층.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의 300㎜ 반도체용 전기도금 장비가 반입되고 있었다. 선행 공정에서 만들어진 반도체 소자가 작동하도록 구리 배선층으로 연결하는 설비다. 이 장비는 앞으로 국내 산·학·연 ‘고객’들이 이용할 예정이다. 박흥수 나노종합기술원장(사진)은 “우리는 고객이 요청한 공정과 시험 평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기관’”이라고 말했다.

나노종합기술원은 연구단계 기술이 상용화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른바 ‘죽음의 계곡’을 넘도록 돕는 공공팹이다. 현재 8인치 공정장비 200대, 12인치 공정장비 20대 등 반도체 제조 관련 장비 400여 대를 운영하고 있다. 180나노미터(nm) 및130nm급 상보형금속산화물반도체(CMOS) 기반 반도체 제작 플랫폼도 제공한다. 공공 연구기관 가운데 처음으로 12인치급 반도체 공공 테스트베드도 구축했다.

주요 서비스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테스트베드 및 플랫폼 기능이다. 가장 많이 찾는 고객은 중소기업으로 2023년 기준 70%에 달한다. 국내 한 중소 반도체 기업은 2024년 나노종합기술원의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수요연계 양산기술 개발 사업을 통해 패키징용 원자층 증착 장비 시제품 2종을 개발했다. 기술원은 중소·중견기업이 개발한 핵심 소재와 장비의 성능과 양산 가능성을 평가하고, 기준을 통과하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수요 기업과의 연계를 지원한다.

박 원장은 “반도체 기술은 시뮬레이션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제 공정에 적용해봐야 한다”며 “그런 환경이 없어서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예컨대 300㎜ 공정에 필수적인 불화아르곤 이머전 스캐너의 경우 신품 가격이 1500억~2000억원에 달한다. 공공 테스트베드가 필요한 이유다.

대기업 수요도 적지 않다. 기술원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와 삼성전자 등도 주요 고객이다. 대기업은 양산 라인에서 바로 적용하기 어려운 신규 소재·공정을 시험하거나, 오염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나노종합기술원을 찾는다. 박 원장은 “양산 팹에서는 함부로 새로운 소재를 쓰기 어렵기 때문에 공공 인프라에서 실험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기술원이 공공 테스트베드를 구축한 건 2019년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을 통제하면서다. 기술원 측은 “중고 장비는 공정 품질 유지를 위해 내부 부품을 교체하는 방식으로 고사양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기술원은 양자 분야에서 약 10년간 양자 센서 연구를 지원해왔고, 바이오 분야에서는 반도체 칩을 활용해 코로나19 등 질병을 신속 진단하는 기술의 제품화를 지원했다.

해외에도 반도체 기업들이 테스트베드를 활용할 수 있는 기관이 있다. 벨기에의 아이멕 등이다. 연간 예산이 10억 유로 수준이고 인력은 6000명에 달하는 대형 실증 허브지만 국내 중소기업은 여기에 접근할 엄두를 못 낸다. 박 원장은 “세계적으로도 공공 기반에서 실증과 평가를 수행하는 기관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최근 기술원에는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 해외 연구기관 관계자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기술원은 반도체 후공정 영역에서도 공공 인프라를 확장하고 있다. 2029년까지 재배선층과 인터포저 기술을 지원하는 300㎜ 웨이퍼 기반 첨단 패키징 장비를 구축하고 이를 개방형 연구개발 플랫폼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