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약은 꼼꼼하게 따지면서 영양제는 무턱대고 먹나

입력 2026-03-13 16:57
수정 2026-03-14 00:28
다이어트 약 위고비와 마운자로, 키 성장을 위한 성장호르몬 주사, 하루를 시작하며 챙겨 먹는 비타민과 오메가3. 오늘날 건강은 더 이상 병이 생겼을 때만 생각하는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맞고, 어떤 생활을 선택하느냐까지 포함한 하나의 ‘관리 프로젝트’가 됐다. 정재훈 약사의 신간 <건강 구독 사회>는 이 익숙한 풍경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과연 건강을 관리하고 있는가, 아니면 불안을 구독하고 있는가.

책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왜 사람들은 부작용이 명확히 기록된 약은 두려워하면서, 효과가 불분명한 영양제는 아무 의심 없이 삼킬까.’ 저자는 이 역설을 과학과 심리의 언어로 풀어낸다. 약은 위험을 끝까지 추적하고 문서화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위험해 보인다. 반면 영양제는 위험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순한 것’이라는 이미지를 얻는다. SNS와 알고리즘, 마케팅이 이 착시를 반복적으로 강화하면서 ‘약은 위험하고 영양제는 안전하다’는 믿음은 어느새 상식이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믿음이 형성된 배경을 해부한다. 먼저 약보다 영양제를 더 신뢰하게 된 문화적·심리적 조건을 짚는다. ‘자연’, ‘순함’, ‘부작용 없음’ 같은 언어가 어떻게 위험을 가리고 신뢰를 만들어왔는지 보여준다. 이어 위고비와 마운자로 같은 GLP-1 계열 약물을 통해 새로운 건강 소비의 풍경을 살핀다. 이 약들은 단순한 비만 치료제를 넘어 몸을 ‘최적화’하는 향상 도구로 소비된다. 저자는 이를 무조건 비난하거나 옹호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줄이 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미용 도구가 되는 이 회색지대를 분석한다.

나아가 영양제와 기능성 식품의 세계로 시선을 옮긴다. 비타민과 오메가3, 유산균, 단백질 보충제는 이제 특정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관리하는 삶’의 상징처럼 소비된다. 저자는 ‘필수 영양제’라는 말이 언제부터 상식이 됐는지, 과학적 근거와 실제 임상 결과 사이의 간극을 짚는다. 또 커피나 홍삼처럼 음식이 약처럼 소비되는 현상, 그리고 그 경계가 산업과 마케팅 속에서 얼마나 쉽게 흐려지는지도 보여준다.

마지막에서는 유전자 검사와 인공지능 기반 맞춤 영양 같은 미래 기술을 다룬다. 무엇을 먹고 어떤 약을 사용할지까지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 저자는 이런 기술이 제공하는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선택의 부담이 개인에게 과도하게 떠넘겨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