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스의 런던 애비 로드, 프레디 머큐리의 스위스 몽트뢰, 제이 지의 미국 뉴욕.
공간이 아티스트의 서사와 만나면 영원한 생명력을 얻는다. 이번엔 방탄소년단(BTS)의 차례다. 북악산과 경복궁 담벼락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서울 광화문 광장이 무대다. 오는 21일 이곳은 BTS의 복귀와 함께 세계인이 주목하는 글로벌 문화 랜드마크로 재탄생할 전망이다.
광화문 광장에 입혀질 BTS의 서사
BTS의 컴백 공연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공식 객석은 2만 2000석 규모지만, 광화문 광장에서 시청 광장, 숭례문까지 이어지는 세종대로 일대에는 최대 30만 명의 인파가 운집할 것으로 관측된다.
서울시와 국가유산청, 소방당국은 물론 특공대까지 가세한 범국가적 초대형 이벤트다. 주변의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은 휴궁, 세종문화회관은 공연을 하루 중단한다. 이미 수십만 명의 해외 아미(ARMY)가 서울에 입성해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공연 타이틀은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ARIRANG)’. 공연 전날 공개하는 정규 5집 앨범명이기도 한 이 이름은 서울의 오랜 역사를 품은 광화문 광장과 만나 특별한 서사를 완성한다.
2020년, BTS가 정규 4집 타이틀곡 ‘ON’을 공개했던 무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뉴욕의 유서 깊은 기차역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을 통째로 빌려 팝의 본토 한복판에서 K팝의 문화 권력을 과시했다.
그로부터 6년 후, BTS는 더 이상 ‘월드 스타’임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최정상 스타가 됐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뿌리인 한국, 서울 한복판으로 전 세계 팬들을 초대했다. 3년 9개월 만의 BTS 완전체 귀환 장면은 팝의 본토가 아닌 K-팝의 안방에서 1시간 동안 펼쳐진다. BTS가 이날 경복궁 근정문부터 흥례문,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왕의 길’을 걷는 퍼포먼스는 K-팝의 문화 권력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다.
<한류 외전>의 저자인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박사는 이번 공연이 “서울이라는 도시와 BTS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역사적인 공연이 될 것”이라며, “해외 팬들에게 하이브 사옥이 성지라면, 광화문은 도시의 역사와 아티스트의 이야기가 결합한 대체 불가능 ‘서사’를 만드는 곳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21세기 ‘혼종성’의 정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낙산공원을 글로벌 관광 명소로 탈바꿈시켰듯, 이번 공연은 광화문을 하나의 거대 IP(지식재산권)로 격상시킬 것으로 보인다. 문화적으로는 21세기 문화 키워드인 ‘혼종성’의 매력이 극대화되는 무대다.
한국의 전통 자산(경복궁, 광화문 등)과 동시대 팝 문화가 ‘이종결합’을 보여준다. 노승림 숙명여대 교수는 “서양 팝 음악에 뿌리를 둔 BTS의 정체성이 조선의 상징인 광화문·경복궁과 교차하며 만드는 ‘재미있는 불협화음’은 그 자체로 새로운 고품격 문화를 낳는다"고 강조했다.
도시 전체를 살리는 BTS노믹스
BTS는 이날 공연을 시작으로 내년 3월까지 34개 도시에서 79회에 달하는 대장정을 펼친다. K팝 아티스트의 단일 투어로 최다 회차로, 5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몰릴 것으로 추산된다. IBK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이번 월드투어에 따른 매출이 2조원, 영업이익은 4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해외에선 50억달러 소비 효과를 불러일으킨 ‘테일러 스위프트 효과(Swiftenomics)’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윤지 박사는 “BTS는 스위프트 못지않은 파워에도 그간 국내에 5만 명 이상 수용 가능한 공연장이 없어 이를 직접 확인할 기회가 적었다”며 “이번 무대는 공연 산업의 경제적 파급력을 실물 지표로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서울 내 초대형 전용 공연장 건립 논의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넷플릭스가 선택한 문화권력
넷플릭스는 이날 공연을 전 세계 190국에 생중계한다. 넷플릭스가 단일 가수의 콘서트를 실시간 생중계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전까지 라이브 콘텐츠는 스포츠 경기나 토크쇼, 시상식 등에 국한됐다.
오는 27일에는 BTS 앨범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추가 공개하며 가입자 '락인(Lock-in) 효과'를 꾀한다. ‘오징어 게임’,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 성공 사례를 남긴 넷플릭스는 BTS 공연 단독 중계를 통해 OTT 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박희아 대중음악 평론가는 “BTS는 수많은 신인 그룹의 등장 속에서도 국가와 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문화 권력을 보여주고, 넷플릭스는 이러한 상징적 기록을 확보하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얻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조민선 / 허세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