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상승 폭을 줄이고 있습니다. 콧대 높던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의 집값은 하락 전환했고 하락 폭도 커졌습니다. 무주택자들은 모처럼 집값이 하락하니 즐거운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메신저 단체 채팅방과 부동산 카페에서는 '드디어 집값이 하락한다'는 무주택자들의 기대가 난무합니다. 일부 무주택자는 심지어 집값이 곧 폭락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합니다. 집값이 내려가면 무주택 서민들에게 도움이 될까요?
지금 집값이 조정을 많이 받는 곳은 소위 주거 선호 지역입니다. 보유세가 부담되니 다주택자가 기존 호가보다 낮은 가격에 매물을 내놓는 것입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매수자들로선 더 매력적일 겁니다. 안타깝게도 이미 대출 규제가 시행되고 있는 지금 이런 매물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은 오롯이 현금 부자입니다.
최근 정부의 대출 규제로 수도권에서 주택가격이 15억~25억원 구간일 경우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4억원으로 제한되고, 25억원을 넘으면 2억원까지 줄어듭니다. 고가 단지일수록 실수요자의 자금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5월9일까지는 다주택자 매물만 갭투자가 허용되기 때문에 그나마 자금 조달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아무리 길어도 2년 내에는 나머지 자금을 조달해야 하고 심지어 이런 자격은 무주택자만 가능합니다.
어느 정도 자산을 보유한 무주택자는 지금과 같이 한정된 시간 내에 매입하기는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불과 1년 전에만 매입했어도 서울 주거 선호 지역의 경우 수억원을 절약할 수 있었지만, 당시에도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5월9일이라는 '데드라인' 내에서 의사결정 하기는 더 쉽지 않습니다.
대출 규제 기준이 15억원, 25억원으로 결정되면서 기준점 효과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기준점 효과란 제시된 숫자가 이후 결정에 심리적 편향을 미친다는 이론입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협상과 투자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15억원이 안 되는 아파트의 경우에는 현재 오히려 호가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9일 기준 서울에서도 아파트 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지역은 성북구와 중구, 서대문구, 강서구입니다. 그동안 소위 강남과 마포, 용산, 성동 지역이 상승할 때 소외된 곳이며 15억원이 안 되는 자금으로도 좋은 단지를 살 수 있는 중간 정도의 급지입니다.
이들 지역은 오히려 대출 규제로 인해 주택 수요가 늘어 가격이 올랐습니다. 이런 현상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됐고 지금도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서울에서 강남을 제외한 많은 지역이 상승 폭을 키우고 있습니다. 따라서 서민들이 살 수 있는 지역은 현재 매입하기 그렇게 좋은 여건이 아닙니다.
현재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주택수요자는 1주택 갈아타기 수요입니다. 본인의 집은 좋은 가격에 수요가 몰려 매도하기 좋고 갈아타려는 상급지 아파트는 오히려 가격이 내려가고 있어서입니다.
물론 1주택자는 다주택자 매물을 매입할 수 없습니다만 현재 주택시장에는 1주택자 매물도 꽤 나오고 있습니다.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세금 및 대출 규제를 예상하면서 나온 매물입니다. 1주택자 매물 또한 다주택자 매물로 인해 가격을 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주택자 매물이 호가를 조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본인의 매물을 높은 가격에 내놓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재 주택시장은 용기 있는 현금 부자 무주택자와 상급지로 갈아타려는 1주택자에게만 좋은 시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물론 그분들이 집을 사느냐 아니냐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주거 선호 지역의 아파트 매물이 쌓이는 것은 사려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정부는 무주택 서민이 가격이 조정된 아파트를 매입하는 혜택을 받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장은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정부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 과연 누구를 위한 대책일까요?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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