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은 지난달 28일 새벽 테헤란, 이스파한 등 이란 주요 도시를 타격하며 전쟁을 개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잃은 이란은 친미 성향의 이웃 중동 국가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고 세계 석유 물동량의 20%가 지나는 페르시아만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나섰죠. 미국·이란 전쟁은 국제유가 100달러 및 원달러 환율 1500선 위협, 코스피지수 급락 등 경제에 큰 충격파를 던지고 있습니다. 올 초 미국의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체포와 그린란드 편입 시도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지구촌 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전쟁은 이란 핵 개발 저지와 군사적 위협 제거가 명분이라지만, 단순한 안보 충돌 사안이 아닙니다. 석유 자원의 중동 편중이란 지리적 문제에 원인이 있습니다. 이게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이라는 공간적 패권을 장악하는 싸움으로 번진 겁니다.
과거엔 “어디서 생산하든 관계없다. 가장 싼 곳이 정답”이라는 효율성이 지배했습니다. 세계화가 이렇게 진행됐죠. 하지만 서방과 공산권 간 대립이 격화하고 미국·중국의 패권 갈등이 커지면서 “비싸더라도 안전한 공급망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확산됐습니다. 장소와 지리적 요인, 영토·경로가 중시되는 경제지리(經濟地理)의 시대가 도래한 겁니다. 지리경제학(또는 경제지리학)으로 풀어본 미국·이란 전쟁의 내면을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세계화 퇴조로 이젠 '평평하지 않은 세계'
공간·권력 따져보는 경제지리학 급부상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란 책 이름을 들어본 적 있나요? 미국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2005년 당시 급격히 불던 세계화의 물결을 이 같은 책 제목으로 표현했습니다. 글로벌 자본이 가장 싼 인건비와 제조 비용을 찾아 지구촌 곳곳을 새 공급망(supply chain)으로 묶어내면서 세계 각국의 경제지형이 큰 편차 없이 평평하게 됐다는 뜻입니다. 인도의 콜센터 직원이 세계 각국 고객의 불만 사항을 처리하고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설계된 아이폰이 중국 광둥성 공장에서 생산되는 혁명적 변화를 말하는 겁니다.
최저비용보다 지리적 안전성
그런데 세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생산요소와 공장이 ‘어디가 제일 싼가’보다 ‘어디에 있는가’ ‘어떤 경로를 통해 오는가’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공급망 속 나라가 우리 편인가” “우리나라와 물리적으로 가까운가”라는 질문도 먼저 합니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세계화의 역설’ 때문입니다. 세계화가 가속될수록 ‘반도체 공장은 대만에, 희토류는 중국에, 석유는 중동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그런데 전쟁이나 팬데믹, 패권 갈등은 하루아침에 이런 공급망을 붕괴시킵니다. 글로벌 아웃소싱으로 자국 내 제조 기반을 없앴던 서구 선진국들이 코로나19 사태 때 방역 마스크 한 장 생산하지 못하는 일도 벌어졌어요. 마침 세계는 진영 간 갈등과 패권 경쟁으로 대립하고 미국 중심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하면서 세계화는 퇴조하기 시작합니다.
지금과 같은 각자도생 시대엔 자원과 공급망이 중요한 무기가 됩니다. 상품성 있는 희토류 공급이 특정 지역(중국)에 집중돼 있다는 지질학적 사실이 강력한 외교 무기가 되고 있습니다. 특정 국가에 생산시설이 집중돼 있는데 정치적 갈등이 갑자기 생기면 공급망 자체가 ‘인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 집중됐던 공장을 동남아와 인도, 멕시코 등으로 분산하는 것은 정치적 안전을 위한 ‘경제 영토의 재조정’입니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 장비의 대(對)중국 수출을 막는 것은 중국이라는 지리적 공간에서 첨단기술이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기술적 봉쇄입니다. 기술의 ‘지리적 독점’이지요. 통로(passage)의 장악도 중요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이나 파나마 운하, 수에즈 운하와 같은 물리적 통로가 막혔을 때의 경제적 손실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지도 위 경제분석’ 지경학 각광
지금은 ‘지리가 곧 운명(Geography is Destiny)’인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지리(地理, Geography)라는 가치가 재발견된 거죠. 자연히 경제지리학(Economic Geography)과 지리경제학(지경학, Geoeconomics)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19세기에 등장한 경제지리학은 ‘지리학자가 경제를 공부한 결과물’이고, 1990년 이후 본격화한 지리경제학은 ‘경제학자가 지리를 연구한 것’으로 보면 됩니다. 지경학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가 기초를 놓아 유명해졌습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경제지리학은 공간과 지리를 권력·불평등·역사가 만들어낸 사회적 산물로 봅니다. 지경학은 수리모델, 균형이론, 계량분석을 많이 합니다. 예를 들어, ‘왜 이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가 궁금하다면 경제지리학에, ‘이 전쟁이 앞으로 글로벌 경제 지도를 어떻게 바꿀지’ 예측하려면 지리경제학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물론 이들 학문 분야는 점차 하나로 통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제학과 경제지리학은 어떻게 다를까요? 경제지리학은 ‘돈과 경제는 지도 위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관점을 견지합니다. 지도를 보지 않고 경제를 이해하는 것은 악보를 보지 않고 음악을 이해하려는 것과 같다고 강조합니다. 경제학이 ‘커피 한 잔의 가격을 분석’한다면, 경제지리학은 ‘왜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재배하고, 네덜란드 항구를 통해 들어오고, 스타벅스 본사는 시애틀에 있는가’에 관심을 갖습니다. 공간과 장소가 만들어내는 권력과 불평등을 분석하는 것이죠. NIE 포인트 1. 경제학, 경제지리학, 지리경제학, 공급망, 지정학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자.
2. “세계는 평평하다”는 뜻과 최근의 변화상을 공부해보자.
3. 이란은 천연 요새라고 불린다. 그 이유를 지리적으로 살펴보자. 호르무즈해협은 에너지 안보의 '조임목'
"전쟁 이후 새로운 지리 블록 형성될 것" 미국·이란 전쟁은 단순한 정치적 갈등을 넘어 자원과 물리적 통로, 글로벌 공급망상의 전략적 요충지가 어떻게 세계경제의 명줄을 쥐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 전쟁은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석유 수송 경로 옆에 위치한 국가가 달러 패권 질서에서 이탈하려 한 것에 대한 미국의 공간적 패권 유지 전쟁”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페트로달러 위협하는 이란
그러면 이번 전쟁의 진짜 원인을 경제지리학으로 찾아볼까요? 핵심은 바로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지리적 공간입니다. 폭이 33km에 불과한 이 해협은 사우디아라비아·UAE·이라크·쿠웨이트의 석유가 세계로 나가는 유일한 바닷길입니다.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의 20%와 천연가스(LNG)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이 해협을 통과합니다. 경제지리학은 이런 곳을 조임목(또는 병목, chokepoint)이라고 부릅니다. 전략적 요충지라는 뜻입니다. 이란이 이런 땅 옆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란에 엄청난 지경학적 권력을 부여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무기화를 통해 전 세계 에너지 가격에 직접적 충격을 가할 수 있는 ‘지리적 레버리지’를 가진 겁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란을 방치하기 어렵습니다.
다음으로 중동에선 왜 전쟁이 끊이지 않을까요? 경제지리학자 마이클 와츠의 ‘석유 지대 또는 석유 국가(Petro-state)’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석유는 땅 밑에 그냥 있는 것이고, 누군가 그 위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는 막대한 부를 얻습니다. 이 부는 생산이 아닌 위치에서 나옵니다. 이란은 세계 4위의 석유 매장국입니다. 이것이 이란을 지속적으로 국제정치의 표적으로 만들어왔습니다.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가 핵 개발을 추진하면 협상으로 끝납니다. 이란이 같은 일을 하면 전쟁이 됩니다. 자원 민족주의와 에너지 패권으로 이런 관계를 설명할 수 있어요. 미국과 이스라엘의 선제 타격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이란의 에너지 인프라는 중동 내 경제적 영향력을 결정짓는 핵심 자산입니다.
경제지리학은 물리적 공간만 다루지 않습니다. ‘금융의 지리’도 분석합니다. 세계 석유 거래는 거의 모두 달러(페트로달러)로 결제됩니다. 중동 산유국들은 석유를 팔아 달러를 얻고,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를 사들입니다. 그런데 이란은 유로화나 위안화 결제 시스템을 활용하며 이 시스템에서 이탈하려 했습니다. 이는 미국 금융 패권의 지리적 기반을 위협하는 일입니다. 이번 전쟁이 단순한 석유자원이 아니라 보다 거시적인 통화 패권을 지키는 목적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에너지 위기, 공급망 재편 가속
미-이란 전쟁이 어떻게 결론 나든 새로운 지리적 블록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봅니다. 지리적 블록이란 예를 들어 공급망 같은 겁니다. 공급망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거죠. 첫 번째 이유는 아시아의 취약성입니다. 이번 전쟁으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뛰어넘기도 했습니다. 원유의 중동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은 국가 안보 차원의 에너지 위기를 맞았습니다. 두 번째는 내륙 국가들의 고립입니다. 중앙아시아의 내륙국들은 이란 항구를 통해 인도양으로 나가던 무역로가 막히게 됐습니다. 이 때문에 다시 러시아나 튀르키예의 통로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습니다. 세 번째는 러시아의 반사이익 가능성입니다. 중동 원유 수송 항로가 막히면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또는 대체 가능한 육로와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러시아가 경제지리적 이득을 취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네 번째는 에너지 지도의 재편입니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세계 각국은 중동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에너지 수입선을 다변화할 겁니다. 이는 북미의 셰일가스나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석유로 에너지 공급망이 재편되는 흐름을 가속화할 전망입니다. 마지막으로 인플레이션의 지리적 전이입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단순한 유가 문제를 넘어 비료 생산비와 제조 원가를 끌어올리고, 이는 식량안보와 물가 전반에 충격을 확산시킵니다. 경제지리학으로 풀어보는 미-이란 전쟁은 이처럼 넓은 세계사 이해의 안목을 제공합니다. NIE 포인트 1. 페트로 스테이트, 페트로달러의 개념에 관해 공부해보자.
2. 경제지리학의 ‘초크포인트’란?
3. 최근 국제적 분쟁 사례를 경제지리학 관점에서 살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