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전과자와 범죄 고위험 인물에 대한 금융회사의 제재는 어느 정도로 이뤄져야 할까. 제프리 엡스타인이 계좌를 개설한 JP모간과 도이체방크가 미국 금융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엡스타인이 유죄판결을 받은 2008년부터 수감 도중 자살한 2019년 직전까지 이뤄진 거래에 관해서다.
1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JP모간 내부 문서와 이메일을 분석한 결과 은행 내부에서 수년간 엡스타인 계좌를 둘러싼 경고 신호가 나왔다. 10억달러(약 1조5000억원)에 이르는 거래금액이 미성년자 성매매 등 불법 활동에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을 것이라는 문제 제기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막대한 현금이 인출된 점이 불법 거래 정황으로 지적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수사 결과 엡스타인은 10년 동안 JP모간 계좌를 이용해 500만달러 이상 현금을 인출하고, 여성들에게 300만달러 이상을 지급한 것으로 파악됐다.
내부의 문제 제기는 JP모간 투자은행(IB) 부문 최고경영자(CEO)이던 제스 스탤리가 무마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엡스타인은 (2008년 유죄판결로) 사회에 진 빚을 갚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탤리가 2013년 초 JP모간을 떠난 뒤 은행은 엡스타인과의 거래를 중단했다. 이후 엡스타인은 도이체방크로 주거래 은행을 옮겼고, 도이체방크는 현재 피해자들로부터 소송에 직면해 있다.
이는 국내 금융회사에 대한 책임 요구 기준과 큰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만으로 은행이나 증권사가 해당 인물과의 거래를 중단할 근거는 없기 때문이다. 판결을 통해 범죄수익 처리나 금융 범죄에 금융 거래가 악용되는 것으로 확정된 경우에만 은행 내부 지침에 따라 고위험 고객으로 분류하고, 거래 제한 또는 거래 관계 종료를 검토한다.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소송까지 직면한 사례는 없다.
반면 영미권에서는 고위험 고객과의 거래 관계 종료가 더 적극적으로 이뤄진다. 영국에서는 금융 범죄 목적의 계좌 사용이 의심되기만 해도 계좌를 폐쇄할 수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한국도 자금세탁방지(AML) 체계상 같은 방향성을 지녔지만 영미권은 감독당국 검사와 제재, 민사 책임, 평판 위험 부담이 더 크다”며 “은행이 보다 적극적으로 고위험 고객과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오히려 권장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임다연 기자 allopen@hankyung.com